한 중공업 회사에서 약 30여년을 용접공으로 근무한 60대 서모 씨는 은퇴 후 올여름부터 고향인 전북 익산의 한 회사에 용접 아르바이트를 다닌다. 아직 갚아야 할 대출금도 많고, 자녀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서다. 서씨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후 부업을 찾는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경기 불황에 따라 조기 은퇴자가 더 늘어날 경우 중장년층의 아르바이트 구직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일 구인·구직 플랫폼인 알바천국에 따르면 올해 1~9월까지 40대 이상 중장년층 알바 지원 비율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3.9% 증가했다. 특히 50대와 60대가 각각 9.3%, 23.9% 늘었다. 반면 이 기간 20대 지원량은 4.4% 줄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9월 고용동향'에서도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7만2000명 증가한 674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대치다. 50대는 같은 기간 2만5000명의 증가폭을 보여 그 뒤를 이었다.
시간제 근무를 뜻하는 아르바이트는 통상 일주일에 정해진 날만 출근하거나, 특정 시간대만 근무하는 노동 형태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 '비정규직'에 속하지만 일주일에 40시간 일하거나, 계약 기간이 1년 단위인 계약직 등 노동 형태와 구분된다.
임금을 적게 받는 대신 시간을 쪼개 사용할 수 있는 근무 형태라 주로 10~20대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해왔지만, 최근엔 중장년층의 알바 구직 수요가 부쩍 늘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11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박모 씨는 "구인 공고를 내면 과거엔 20대 젊은 학생들이 주로 지원했는데 요즘은 절반 이상이 중장년층"이라며 "현재 고용한 알바생 8명 중 5명이 40대 이상이다. 이 중 한 사람은 60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에는 정유 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하셨다는 70대 노인분까지 고용한 적이 있다"며 "손이 너무 느리셔서 정중하게 다른 일을 알아보시라고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라고 덧붙였다.
50대 김모 씨도 두 달 전부터 한 전기 설비 회사에서 오전 근무만 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올초 17년간 다니던 같은 업종 회사에서 퇴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은퇴 시기에 때마침 건강도 악화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고 있다"며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직종이라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주로 은퇴 후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무직이거나 아직 은퇴하지 않은 중장년층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다. 특히 부업을 찾는 전업주부가 구직 시장의 주요 인력으로 떠오른 모양새다.
편의점주 박씨에 따르면 그의 편의점에서 주말 오후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고 있는 40대 A씨는 평일엔 본업을 하는 '부업족'이다. A씨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두 딸의 학비에 보태고 있다. 박씨는 "평일 근무자는 아무래도 은퇴한 분이 많고, 주말엔 본업이 있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50대 주부 조모 씨도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서 주 3일 일하고 있다. 조씨는 "젊었을 때 잠시 미용실을 하다가 20년 넘게 주부로 살았다"며 "올해부터 가정에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중장년층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두고 베이비 부머의 '은퇴 러시'가 그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1차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 705만명이 은퇴한 상황에서 단일 세대로는 최대 규모인 2차 베이비 부머(1964~1974년생) 954만명이 법정 은퇴 연령인 60대에 진입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경기 불황에 따라 은퇴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정규 일자리 취업도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많은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1963년생이 올해 61세이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부터 2차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시작된 셈"이라며 "그런데 경기가 어렵다 보니 조기 퇴직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차 세대의 은퇴 러시는 1차 때보다 더 빠르고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