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금리가 연 5%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트럼프 트레이드’가 확산한 결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관세 인상으로 미국 내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각종 감세 정책으로 정부 재정 지출을 늘려 국채 발행량이 많아질 경우도 국채금리에 대한 상승 압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 1기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이 실행되지 않거나 예외 조항을 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섣불리 투자 전략을 조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세를 점할 경우 공약을 실행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투자 전략을 짤 때 신중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국채금리, 7월 이후 최고치
10월 26일(현지 시간) 낮 12시 기준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연 4.242%로 거래됐다. 올 7월 말 이후 최고 수준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9월 16일 연저점(연 3.621%)과 비교하면 약 0.63%포인트 급등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급등하면서 ‘트럼프 트레이드’가 확산한 결과다. 그가 재선되면 대규모 국채 발행,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등으로 국채금리가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10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이 매체와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X가 21∼22일 이틀간 전국 투표 의향 유권자 1244명을 상대로 실시한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1% 대 49%로 오차범위(±2.5%포인트) 내에서 해리스 부통령에게 앞섰다. 지난 9월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4%포인트 차로 앞선 것과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월 19일부터 나흘간 미국 전역 등록 유권자 15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47%)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45%)보다 2%포인트 높았다. 트럼프, 보편관세 공약으로 내세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관세 최대 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 △멕시코 생산 중국 자동차에 100~200% 관세 등을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월가 투자자 및 경제학자들은 관세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0월 17일(현지 시간) 브루킹스연구소에서 ‘2025년 보편관세가 어떻게 혼란을 초래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경제정책 교수는 경제학 저널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실린 글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 1기 시절 세탁기 관세 인상으로 미국 근로자 1인당 80만 달러의 추가 소비자 비용이 발생한다는 논문이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외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겨냥한 것으로 120만 대를 초과하는 세탁기에 50%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관세는 외국이 아니라 가정과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정부 당시 부과한 관세는 약 3800억 달러어치 수입품에 영향을 미쳤다”며 “현재 그가 계획하는 관세는 당시의 8~9배에 달하는 규모를 다루며 가정과 기업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또한 10월 17일(현지 시간)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보편관세’ 공약에 대해 “(구체적인) 타깃이 없는 광범위한 관세는 미국 가정의 물가를 올리고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뉴욕에서 미국외교협회(CFR)가 진행하는 대담에 참석하기에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우방이나 경쟁국 모두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가장 가까운 동맹국조차 거래 파트너로 보고 미국을 (세계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랜딩 가능성까지 나와
강한 노동시장과 소비 호조로 노랜딩(무착륙) 가능성까지 나오는 것도 국채금리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연금 전문 자산운용사인 티로프라이스는 현재 연 4%대 초반에서 움직이는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6개월 내 연 5%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비드 로젠버그 로젠버그리서치 회장은 “국채금리 상승이 본격화한 건 3주 전부터”라며 “시장 베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선 때라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9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전월 대비 25만4000명 늘어나면서 시장 예상치를 큰 폭 상회했다. 9월 실업률은 4.1%로 예상치와 전월치보다 둔화했다. 소비자물가가 둔화하는 가운데 고용은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각에선 Fed의 추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상무부는 9월 소매판매가 7144억 달러로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고 10월 17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는 전월 대비 0.3% 증가를 예상한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전망을 소폭 웃돈 수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 상승했다.
월간 소매판매 지표는 전체 소비 중 상품 판매 실적을 주로 집계하는 속보치 통계로 미국 경제의 중추인 소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진다. 시장 기대를 웃돈 소매판매는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가 우려했던 만큼 둔화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Fed의 빅컷으로 한때 약세를 나타내던 달러화 가치는 다시 치솟고 있다. 미국 내 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 요인이다.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월 26일(현지 시간) 낮 12시 기준 104.26으로 8월 1일(104.42) 후 가장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 트레이더들은 미 대선을 앞두고 약달러 베팅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10월 둘째 주 기준 헤지펀드·자산운용사의 달러 공매도 비중은 전주 대비 약 80억 달러 감소했다. 주간 기준으로 2021년 이후 가장 큰 변동 규모다. “트럼프, 집권하면 달라질 것”
일각에선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누빈자산운용 채권 담당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앤더슨 퍼슨은 10월 22일(현지 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까지 갈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 “그렇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이 승리하고 관련해 여러 정책들이 그대로 실행될 때 그럴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는 설명이다.
퍼슨 CIO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4% 정도에서 거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채권 분야 포트폴리오나 자산 배분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며 “선거 결과가 정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퍼슨 CIO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의 경험을 통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항상 추진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배웠다”며 “만약 공화당과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한다면 관세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들이 논의 중인 수준으로 관세가 시행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