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병원 연구진이 성실한 삶의 태도가 유전성 치매 발병시기 늦춘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단국대병원(병원장 김재일)은 손혜주 핵의학과 연구팀(사진)과 서울아산병원 김재승 핵의학과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우성 유전 알츠하이머병 네트워크(DIAN) 코호트 국제 연구에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비유전적 생활 습관 요인이 유전성 치매의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고 29일 밝혔다.
유전성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나이가 단순히 유전적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노력해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를 진행한 교수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유전성 치매로 알려진 우성 유전 알츠하이머병(ADAD)은 일반적인 치매보다 이른 나이인 30~50대에 발병하며 전체 알츠하이머 환자의 1%도 안 되는 매우 드문 유형이다. 이 병은 특정 치매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며, 부모와 비슷한 나이에 발병하는 경향이 있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일상생활을 잘 해내는 능력을 말하지만 치매 연구에서는, 뇌의 손상이 있어도 기억력과 사고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기존 연구에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일반 노인들의 치매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유전성 치매에서도 이런 비유전적 생활 습관이 증상 발병 나이를 늦출 수 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DIAN 연구는 유전성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수십 년 전부터 임상 및 인지 검사, 뇌 영상, 혈액 및 체액 샘플을 표준화된 프로토콜에 따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대규모 국제 임상 연구다. 연구에는 미국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하버드 의과대학, 메이요 클리닉, 호주 신경과학 연구소, 독일 튀빙겐 대학교, 뮌헨 대학교를 포함한 전 세계 10개국, 20개 이상의 권위 있는 치매 연구기관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유전성 치매 환자와 가족 529명을 임상·인지 검사, 뇌척수액에서 측정한 타우 단백질 수치, 운동, 사회 활동, 삶의 경험 및 행동 양식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발병 원인으로 알려진 타우 단백질 수치가 높아도 인지 기능을 유지한 ‘높은 회복탄력성 그룹’은 치매 증상을 보이는 그룹보다 인지적으로 활발하고 사회적으로 통합된 삶을 살았다. 또 성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사회적 협력 및 이타적 태도에서 높은 점수를 보였다.
연구팀은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경험은 발병이 임박한 후기 전임상 시기에서도 치매 발병 연령을 늦추는 독립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성실성 지표는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평가하고 미래 치매 발병을 예측하는데 유용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유전성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회복탄력성을 정의한 첫 학술적 시도인 이번 연구는 개인의 노력으로 조절할 수 있는 비유전적 생활 습관이 유전성 치매 증상 발병 나이와 의미 있는 연관이 있음을 최초로 밝혀 치매 연구 분야에서 큰 전환점을 제시한 중요한 연구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미국신경과학회(AAN, American Academy of Neurology) 공식 학술지인 뉴롤로지(Neurology) 9월호에 게재됐다.
손혜주 교수는 “성실성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며 “이는 기존 치매 연구에서 주로 다룬 특정 인지 기능 점수나 사회경제적 배경의 영향을 받는 교육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전 생애 동안 뇌의 활동성과 목적성을 유지하는 습관으로 굳어진 고차원적 지능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성실한 삶을 선택하고 이를 지속하는 것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성실성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조절할 수 있는 중요한 치매 예방 요인”이라고 말했다.
천안=강태우 기자 kt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