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나란히 시험대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다음달 10일 임기 반환점(취임 2년6개월)을 맞는다. 5년 단임 대통령으로서 임기 전반기 성과를 평가받고, 후반기를 끌고 갈 동력을 확인하는 시점이다. 한 대표도 30일 취임 100일을 맞아 그간 활동에 대한 ‘1차 결산’을 한다. 현시점에서 윤 대통령에게는 한 대표가, 한 대표에겐 윤 대통령이 최대 과제다. 정권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윤·한 갈등’부터 풀어내야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尹, 정책 드라이브로 돌파구대통령실은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 추진과 정책 홍보에 힘을 쏟아 김건희 여사 문제에 과도하게 쏠린 여론의 관심을 돌린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4대 개혁 추진이 곧 민생”이라고 밝힌 데 이어 29일 국무회의에서도 “4대 개혁 과제 추진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임기 반환점 전후로 4대 개혁을 비롯해 향후 국정 운영 방향과 관련해 대통령실 참모진뿐 아니라 부처 장차관들이 대국민 소통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저출생 등 주요 정책을 대통령실 참모가 직접 발표하는 ‘정책 브리핑’을 늘리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소통 강화를 위해 이르면 다음달 말 기자회견을 열어 여러 현안을 직접 설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별개로 ‘국민과의 대화’, 방송사 대담, 언론사 인터뷰 등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 여사 논란을 잠재우지 않으면 정책 드라이브도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대국민 사과, 김 여사의 해외 순방을 포함한 공개 활동 중단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다만 한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취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러면서도 지지율을 반등시킬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韓, 스탠스 바뀌나한 대표도 윤·한 갈등을 이어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20년 전 정동영, 10년 전 유승민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란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가 정치적으로 실패한 인물이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한 대표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이 때문에 29일 한 대표는 “우리 정부가 추구해 온 성과를 하나둘 국민께 체감시켜 드려야 한다”며 정책 행보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주부터 당정 협의와 친윤(친윤석열)계 의원의 국회 토론회를 직접 챙기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30일 예정된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메시지를 강조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윤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요구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과 이후 천명한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에 대한 주장은 이어갈 전망이다. 이들 요구를 중심으로 친한(친한동훈)계가 결집하고 있는 만큼 좌초될 경우 한 대표의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여권 중진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날 김기현 권영세 나경원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이 공동성명을 냈다.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실에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한편 한 대표를 향해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매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성명 발표는 오 시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한 갈등의 중재자로 역할을 하며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경목/양길성/박주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