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29일로 예정됐던 신종자본증권 수요예측을 전격 중단한 건 가계 빚 관리를 책임진 금융당국이 재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디딤돌 대출에 이어 전세대출을 놓고도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엇박자가 나면서 대출 수요자와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른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일정도 일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채권시장까지 흔드는 엇박자 정책HUG가 최대 7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조달을 추진한 건 자본 확충이 시급해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HUG의 자산총계는 2022년 말 5조5916억원에서 작년 말 2조99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가 급증한 탓에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대위변제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HUG는 지난해 3조5544억원을 대위변제로 지출한 데 이어 올 들어 9월까지 3조220억원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을 늘리지 못하면 전세보증금반환 및 전세대출 보증 업무가 막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할 때, 전세대출보증은 세입자가 은행에 대출금을 갚지 못할 때에 대비하는 보증이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기능이 있지만, 보증만 있으면 수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어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는 역효과도 동반한다.
HUG는 자기자본의 90배까지만 보증을 설 수 있다. 자본 감소로 4분기 말 HUG의 보증 배수는 13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보증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HUG의 신종자본증권 물량이 기약 없이 대기 중인 것은 채권시장에도 부담이다. 신용도 최우량(AA+)인 대규모 물량이 제때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으면 다른 기업의 회사채 투자 수요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게 채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책대출 고수하는 국토부국토교통부가 최근까지도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조절 요청을 무시하고 디딤돌·버팀목 정책대출 공급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금융위원회의 중단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부가 최근 디딤돌 축소를 두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게 부담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부는 앞서 디딤돌 한도 축소 협조 공문을 은행권에 보냈다. 대출 한도가 수천만원 깎이게 된 무주택 서민의 반발이 커지자 시행일을 사흘 앞둔 지난 18일 ‘잠정 유예’ 조치를 내렸다. 23일엔 비수도권 적용 배제를 포함한 개선안을 이른 시일 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그런데도 “정책대출 대상을 줄이는 일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신생아특례대출 확대 방침은 고수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월 출시된 신생아특례대출 신청액은 최근 누적 10조원을 넘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생아특례는 출생률 제고라는 국가적 과제를 위한 정책”이라며 “부부합산 소득 요건을 1억3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올리는 구상도 예정대로 연내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채관리 추가 대책에 촉각‘가계부채 관리’와 ‘주거 안정’이라는 상반된 목표 아래 부처 간 엇박자가 이어지는 동안 가계대출은 속절없이 늘어났다. 같은 정책대출인데 국토부의 디딤돌·버팀목은 올 9월까지 30조원 늘어났지만 금융위의 보금자리론은 16조원 줄어드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 혼선과 오락가락하는 메시지는 금융소비자의 불안과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는 다시 가계부채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시장은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가계부채 관리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지역별, 소득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과 전세 및 정책대출에 DSR을 적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강현우/장현주/이인혁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