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 관련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한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국에 대한 최첨단 기술 투자 통제 규칙을 확정해 중국 견제의 고삐를 죄려는 것으로 풀이된다.◆중국 AI 스타트업 투자 제한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14105호’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 부처 간 협의를 거쳐 28일(현지시간)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최종 규칙은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홍콩과 마카오 역시 ‘우려 국가’로 규정했다. 통제의 목적은 중국이 해당 첨단 기술로 군사 역량을 키우는 일을 막는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개방적 투자 정책이 미국 경제 활력에 기여하고 있다”면서도 “우려 국가들은 미국의 투자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미국 기업과 개인이 중국의 반도체 양자컴퓨팅 AI 분야에 투자하는 경우 사전에 투자 계획을 미국 재무부에 신고해야 한다. AI 분야에선 군사에 관계된 중국 AI 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금지된다. 지난해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사이 중국 AI 기업의 글로벌 투자 거래 중 17%에 미국 자본이 들어갔다. 10건 중 9건이 벤처캐피털 단계에 참여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특정 전자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특정 제조 또는 고급 패키징 도구, 특정 고급 집적회로 설계 또는 제조, 집적 회로용 고급 패키징 기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거래 등이 금지된다. 집적 회로 설계, 제작 또는 패키징과 관련된 거래도 신고해야 한다. 폴 로젠 미국 재무부 보안 담당 차관보는 보고자료에서 “(규제 대상은) 첨단 암호 해독 컴퓨터 시스템이나 차세대 전투기 같은 군사, 사이버 보안, 감시 및 정보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팅과 관련된 개발 또는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생산, 양자 감지 플랫폼 개발 또는 생산, 양자 네트워크 또는 양자 통신 시스템 개발 또는 생산 등의 거래가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라 민사 및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벌금은 최대 36만8136달러(약 5억원) 또는 금지된 거래액의 2배 중 더 큰 금액을 한도로 부과한다.◆상장 주식 투자 금지도 가능상장 주식 등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증권에는 예외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기존 투자는 제외하고 이번 조치가 시행되는 시점 이후의 신규 투자만 적용 대상이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이전에 발표한 행정명령에 따라 특정 중국 기업 증권 매매를 금지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하원 중국특별위원회는 “주요 미국 지수 제공 업체가 미국 투자자의 자금 수십억달러를 중국 기업 주식으로 유도해 중국 군대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이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함에 따라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은 규제에 맞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자립을 추진하는 한편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의 생산·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행정명령 최종 규칙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