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90% "코스닥 상장 규정이 성장 발목…'R&D 할수록 불이익' 법차손 요건 개선해야"

입력 2024-10-28 17:22
수정 2024-10-28 17:23
복수의 다국적기업과 공동 개발을 통해 내년 매출 증가를 예상하는 국내 바이오헬스기업 A사는 내년 관리종목 지정을 앞두고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상 ‘법인세 비용 차감 전 당기순손실’(법차손) 요건 때문이다. A사 대표는 “수년간 수십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해 세계 최고 기술의 결실이 조만간 나오는데, 돌아오는 건 빨간딱지(관리종목)”라고 한탄했다. 국내 바이오기업 10곳 중 9곳은 코스닥 상장 규정이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법차손 요건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28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바이오협회에 의뢰해 국내 바이오·헬스기업 170곳을 상대로 법차손, 매출액 등 상장 요건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91.7%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중 50.3%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3%에 불과했고 5.3%만이 ‘영향이 없다’고 했다.

특례상장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복수응답)에 대해 물어보니 ‘법차손 요건 완화’가 74.7%로 가장 높았다. ‘매출액 기준 완화’는 61.2%,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 개선’은 25.9%로 뒤를 이었다. 코스닥 상장 규정상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의 50% 이상 법차손이 발생하거나 매출이 3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기업 자금 사정에 대해선 92.4%가 ‘원활하지 않다’고 답했고 ‘원활하다’는 응답은 5.9%에 불과했다. 상당수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법차손 등 상장 규정을 지키기 더욱 어려워진 이유다. 작년과 비교한 자금 사정도 ‘더 나빠졌다’(부정적)는 의견이 74.1%를 차지했다.

바이오기업을 경영하는 데 가장 어려운 대외환경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엔 ‘외부투자 유치의 어려움’이 87.6%로 가장 높았고 ‘정부 R&D 지원 감소’(51.2%)가 뒤를 이었다. 고용 계획에 관해 물었더니 ‘늘릴 예정’이라는 응답은 20%에 불과했고 ‘줄일 예정’이라는 응답이 30.6%, ‘유지하겠다’는 응답은 49.4%를 차지했다. 바이오업계의 자금난이 장기화하면서 후보물질을 팔고, 연구 인력을 내보내 ‘1인 기업’이 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업종 내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알테오젠 등 일부 기업만 호황일 뿐 대다수 기업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KRX헬스케어지수 73개 종목 가운데 하위 50개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은 13.8%에 불과했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상장 규정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선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상장 규정을 맞추기 위해 과감히 R&D를 포기하려는 기업도 갈수록 늘어 국가 바이오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후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