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일환으로 포이즌 필을 비롯해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을 저울질한 바 있다. 하지만 야권 반대 등에 밀려 도입이 무산되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주주·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2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올해 정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을 위한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 6월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가 연 세미나가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 도입이 시급하다는 재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국에서 기업들이 밸류업에 소극적인 것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영권 방어 제도가 취약하다 보니 자사주나 비상장사를 활용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에 소홀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면 기업이 주주 환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정부는 의견을 수렴한 뒤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도록 상법을 개정하면서 해당 내용을 함께 넣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도 포이즌 필을 허용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가 “재벌 특혜”라고 반대해 무산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정부가 야당 반대를 이유로 제도 도입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며 “고려아연 사태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전에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지난해 77곳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23개국 가운데 미국 550곳, 일본 103곳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 포이즌 필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으면 대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발행하는 제도.
김익환/류병화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