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이고 과감한 인구 정책으로 전라남도가 대한민국 인구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김영록 전남지사(더불어민주당)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국적인 지방소멸 위기 속에 전라남도는 2024년을 지방소멸 극복 원년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인구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전남·시군 출생기본수당, 전남형 ‘만원주택’ 등 참신한 정책 시도가 대한민국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헌법 개정에 앞서 지방 권한을 일부라도 확보하는 ‘전라남특별자치도’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설치를 마치면 그 효과를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김 지사는 “무늬만 지방자치로는 지방을 살릴 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다”며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지방이 국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데 전남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저출생 현상입니다. 고령 인구 비율은 19%로 초고령 사회 문턱에 있습니다. 지난 6월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전남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1970년대 330만 명대였던 인구가 올 3월 기준 180만 명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대한민국 인구는 66% 늘었습니다. 환산해보면 전남 인구 369만 명이 수도권과 대도시로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매년 청년 8000여 명이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고령인구 비율 또한 26%에 달해 전국 최고입니다. 2052년에는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고령인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라남도는 올해를 지방소멸 극복 원년의 해로 정했습니다. 8월 ‘2050 전남 인구대전환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등 실효성 높은 인구 정책 개발과 적용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노력이 출생아 수 증가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전남의 7월 출생아 수는 726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97명 늘었습니다. 증가율은 15.4%로, 2010년 11월(17.8%) 이후 가장 큰 증가율입니다. 전남의 다양한 인구 정책이 시너지를 내 출생아 수 증가와 같은 구체적 성과가 속속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구 대전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인구 대전환 프로젝트는 가족·기회·유입·안착·공존이라는 5대 분야와 15개 중점전략, 100개 사업으로 구성한 전남만의 인구 위기 대응 전략입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전 과정이 중요합니다. 출산이나 돌봄 서비스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자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구 대전환 종합계획은 임신과 출산, 일·가정 양립 문제를 일자리, 교육, 문화 등의 영역과 함께 종합적으로 다뤄 정책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출생기본수당과 만원주택 등 핵심 선도사업은 대한민국 인구 정책의 아젠다를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뽑힌 정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각 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전남을 사람이 모여드는 ‘살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인구 정책의 대표 사업은 무엇입니까.
“내년부터 ‘전라남도·시군 출생기본수당’을 지급합니다. 2024년 이후 전남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1~18세 18년 동안 매월 20만원을 줍니다. 셋째 애까지 낳으면 최대 1억296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진 외국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며 출생률 반등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출생수당 지원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전국 최초로 시행한 ‘전남형 만원주택’도 뜨거운 호응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월 임차료 1만원에 맞춤형 아파트를 공급해 이들의 가장 큰 부담인 주거비를 해결해 주는 정책입니다. 외국인 정책을 종합·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전남 이민·외국인 종합지원센터’도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전남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한 광역형 비자를 통해 지역에서 설계하고 국가가 승인해 지역산업에 필요한 인력 확보가 가능해졌습니다.”
▷생활인구 확대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올 7월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은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2024년 1분기 생활인구’를 산정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전남 구례의 등록인구는 2만4000명인 데 비해 체류 인구는 4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18.4배, 전국 1위입니다. 이처럼 인구의 자연 증가뿐만 아니라 생활인구 유입도 지역민의 빈자리를 채우며 지역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전남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생활인구 확대 시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남 외에 거주하면서 전남을 사랑하는 분들이 가입하는 ‘전남 사랑애(愛) 서포터즈’는 올해 들어 52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전남사랑도민증과 연계해 농수특산물, 관광 할인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체류 인구수만 늘려서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체류에서 정주로 전환하는 계기 마련이 필요합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인구감소지역 1가구 2주택 양도·종부세 특례를 지역 중소도시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독일처럼 복수주소제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도시에 하나, 농어촌에 하나씩 주소지를 추가해 지방 체류가 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지역소멸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언급한 정책 모두 추진할 수 있나요.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 해도 지방에 권한이 부족하다 보니 한계가 많습니다. 특히 지방의 의사와 입장을 국정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역 균형발전 특별회계의 경우, 중앙부처에서 편성하는 지원계정은 갈수록 증가했지만 지방에서 편성하는 자율계정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또 자율계정에는 국가사업 성격의 고정예산이 71%를 차지하고 있어 지방의 자율성은 더 부족한 상황입니다. 지방 고유사무인 옥외광고물 관리 등도 상위법에 근거가 없으면 조례 제정이 어려운 현실이고, 국가예방접종과 같이 지방비 부담사업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생 기본수당과 같이 지역 특성에 맞는 인구시책을 추진하려고 해도 통상 6개월이 소요되는 복지부의 사회보장제도 협의가 필수적입니다.
산업도 마찬가지인데요. 광양만권은 입주 희망 기업이 많지만, 공장 지을 땅이 없어 산단 개발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지정계획, 산지전용 허가, 개발제한구역(GB) 해제 등 지방 산단 조성에 필요한 인허가권이 중앙에 있어 최소 7년이 소요됩니다. 해상풍력발전 허가와 김 양식장 개발 등 현장 관리를 위해서도 지방에 허가권이 있어야 하는데, 중앙이 허가권을 틀어쥐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책을 적기에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라남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선 지방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 독일은 지방정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연방상원이 지방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 연방정부가 주 정부에 세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법에 배분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프랑스도 지방정부 대표와 하원의원, 지방의원 등이 상원의원을 뽑고, 입법 절차를 통해 지방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독일 연방 주 정부 수준의 지방정부를 실현해야 합니다. 독일·프랑스와 같이 상원제를 도입해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방 재정 권한을 확대해 국가가 세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실질적 지방 권한 확보를 위해서는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가 급한 지방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에 앞서 지방 권한을 일부라도 확보하는 선제적 대책이 요구됩니다. 전라남도는 전라남특별자치도를 설치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전남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에너지·관광·농어업·첨단산업 등에 대한 권한을 대폭 위임받아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지역 주도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서 독일 연방 주 정부 수준의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선도해 나가겠습니다.”
무안=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