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생 조연으로 살았던 배우로서 말해주고 싶다. 지금 힘들고 슬럼프가 있더라도 이 바닥은 버티면 언젠가 되니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 고(故) 김수미가 생전 썼던 글 속에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후배들을 향한 애정어린 조언이 가득했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고인의 아들 정명호 나팔꽃F&B 이사는 "엄마가 워낙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가서 보니 손으로 써둔 원고들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고인이 미리 정해둔 책 제목은 '안녕히 계세요'. 정 이사는 글 속에 고인이 은퇴 후 음식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은 시어머니의 실제 모습은 '여린 엄마'였다고 밝혔다. 서효림은 시어머니인 고인을 평소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서효림은 "결혼할 때도, 이후에도 주변에서 '시어머니 무섭지 않으냐'고 많이 물어봤지만 '우리 엄마가 나(서효림) 더 무서워해'라고 응수하곤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효림은 "조문 와주신 분들 모두 '황망하다', '어제도 통화했는데', '사흘 후에 보기로 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다"며 "늘 동료와 후배, 그중에서도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셨다. 음식 한 번 안 받아본 분들이 없더라"라고도 했다.
정 이사는 엄마의 마지막 요리가 풀치조림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마가 가장 잘하는 음식이었고, 최근에 생각나서 해달라고 졸랐더니 '힘들어서 못 해'라고 하시고는 다음 날 바로 만들어서 집에 보내주셨다"면서 "저는 풀치조림을 가장 잘 먹었는데, 효림이는 뭐든 잘 먹고 또 많이 먹어서 엄마가 더 예뻐하셨다"고 덧붙였다.
빈소에는 특유의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스터 속 사진이 영정으로 놓였다. 부부는 그 미소를 보며 아들이 드디어 늦장가를 간다고, 손녀를 품에 안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엄마를 기억했다.
부부는 "생전에 늘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써달라고 말씀하셨어요"라며 "지금도 집에 가면 드라마 재방송 보면서 그대로 계실 것만 같은데. 모든 부모 잃은 자식의 마음이 같겠지만 더 잘하지 못해서 후회되고, 그래도 엄마와 만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