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복사되듯 들어와요"…2030 홀린 솔깃한 '부업' [이슈+]

입력 2024-10-26 10:37
수정 2024-10-26 10:56

"집에서 잠깐만 시간을 내면 되는 부업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자기네들이 대형 배급사로부터 직접 외주를 받는 거라고 하니 철석같이 믿었죠. 3일 만에 316만원이 사라졌어요." ('영화 리뷰' 부업 사기 피해자 60대 강모 씨)

영화 리뷰만 달면 현금을 준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른바 '영화 리뷰' 알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화 티켓 구매 미션'이라며 돈을 선입금 받고 현금과 포인트로 수익금을 붙여 환급해주다가 금액이 커지면 잠적하는 수법이다.


25일 한경닷컴 취재 결과 해당 사기는 주로 재택근무인 부업을 찾는 이들을 상대로 이뤄졌다. 문자 메시지와 각종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유롭게 시간과 장소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 하루 2시간 이상만 일하면 최소 4만6000원을 벌 수 있다"고 홍보하며 대상자를 물색했다.

메시지에 있는 카카오톡 채널 링크를 타고 들어가 구직 의사를 밝히면 한 영화 리뷰 사이트 가입을 종용한다. 사이트에는 국내 유명 영화사와 배급사 로고를 실어놓아 마치 이 업체들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꾸몄지만, 해당 업체들 모두 "사이트와 무관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입 후엔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영화 예고편을 보고 평점과 리뷰를 달면 바로 현금을 입금해 준다. 피해자인 30대 최모 씨는 "첫날 약 2분짜리 영화 예고편 네 편을 보고 평점을 매기니 7만원을 진짜 입금해줘 신기했다"며 "메신저로만 연락하던 업무 담당자는 '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니 연락을 잘 받아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며칠간 수익을 올린 이들은 '영화 티켓 구매 미션' 단계로 넘어갔다. 업무 담당자는 "평점이 낮거나 관객 수가 적은 영화에 리뷰를 달아주고 티켓을 구입해서 영화를 띄우는 일"이라며 "티켓 구입 비용을 지불하면 수익금을 붙여서 환급해주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4~5명의 알바생을 한 텔레그램 채팅방으로 초대해 실시간으로 미션을 내려보냈다. 최씨는 "담당자가 이 일은 정해진 시간에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면서 채팅방 참여자가 한 팀이라고 했다"며 "한 명이 너무 늦으면 팀 전체가 수익금을 못 받는 방식이라고 해 모두가 뭐에 홀린 듯 미션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수익금은 현금과 포인트로 구성됐다. 가령 티켓 구입 가격으로 5만원을 입금하면, 10분 뒤 6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1만원을 영화 사이트 내에서 현금화가 가능한 포인트로 주는 식이다. 미션이 계속될수록 영화 구매 비용은 거의 두 배씩 뛰었다.

그러다 미션 금액이 커지면 선입금된 돈만 챙기고 연락이 끊기거나, 채팅방이 폭파된다. 지난 14일부터 4일간 해당 알바에 참여한 최씨는 195만 원어치 구매 미션을 수행한 뒤 이것이 사기임을 눈치챘다. 그는 "구입 금액이 100만원 단위를 넘어서자 다음 미션까지 수행하면 한 번에 환급해주겠단 식으로 바뀌더라"며 "그때부터 이상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미션 금액이 360만원까지 올라 그만하겠다고 했다. 195만원 원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담당자는 3영업일 정도 소요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입금되기로 한 날에 담당자 카카오톡 계정과 텔레그램 방 모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수익금 중 일부 형태였던 포인트 역시 돈을 갈취하는 수단이다. 처음엔 리뷰 작성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급해준 것처럼 포인트 역시 현금화를 요청할 경우 바로 응해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포인트가 쌓이면 금융감독원 등 기관에서 이를 수사 중이라며 소득세로 포인트의 10~50% 정도를 선입금해달란 식이다.

또 다른 피해자 강씨는 "영화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포인트를 현금화한 후기가 막 올라온다. 업무 기간 중 두 차례 포인트를 실제 현금화하기도 했다"며 "포인트가 400만원 가까이 쌓였을 때 소득세를 넣어달래서 165만원을 입금했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부업을 찾는 어린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빚까지 내며 해당 알바를 하고 있단 우려도 나온다. 박무궁 법무법인 로하스 변호사는 "올해 영화 리뷰 사건만 총 50건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나이가 어린 분들"이라며 "돈이 복사되듯 들어오니 몇천만원 빚을 내 미션에 참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영화 리뷰 알바도 사기 수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업체를 신뢰한 피해자를 상대로 통장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럼 해당 통장은 미션 과정에서 다른 피해자들의 돈을 입금받거나 보이스피싱에 활용된다"면서 "가해자들이 대부분 외국에 있어 잡기가 어렵다"고 부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피해자에게 신뢰를 얻고, 실제 대가를 제공하는 수법을 써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 같다"며 "'댓글 알바'처럼 댓글, 리뷰로 영업하는 비즈니스가 일반화된 상황이지 않나. 더욱더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