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찾아왔습니다. 올봄을 휩쓴 '긱시크'를 거쳐 여름에는 '걸코어'가 유행했죠.
긱시크는 괴짜라는 뜻의 '긱(Geek)'과 세련됐다는 의미의 '시크(Chic)'의 합성어로, 모범생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무릎을 덮는 치마, 투박한 디자인의 니트, 단정한 셔츠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었죠. 걸코어는 '소녀(Girl)'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옷을 의미합니다.
기온이 떨어지고 계절이 가을로 바뀌니 트렌드는 '드뮤어'로 바뀌었습니다. 드뮤어룩, 드뮤어코어와 같은 용어가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드뮤어는 '조용한, 얌전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Demeur'에서 파생된 단어로, 차분하고 우아함을 강조한 패션입니다.
지난해 패션업계 전체를 휩쓴 '올드머니(상속받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고급스러운 옷차림)', '스텔스 럭셔리(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 명품)' 등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들 트렌드 모두 로고를 앞세워 제품의 가치를 나타내지 않고 높은 가격대와 고급 소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치를 표현하는 게 특징이었죠.
드뮤어룩은 채도가 높지 않고, 단정해 보이는 디자인입니다. 딱 보면 '꾸안꾸(꾸민 듯하면서도 안 꾸민 느낌을 줄 만큼 자연스럽다는 뜻)'인 거죠. 편안한 핏과 상·하의 톤을 맞춘 차분한 색감으로 절제된 스타일링을 하는 겁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 따르면 드뮤어룩 관련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30% 증가했다고 합니다. 관련 제품으로는 블라우스·셔츠, 니트, 롱스커트, 맥시 원피스, 코트, 숄더백 등이 있죠.
제품별 매출도 볼까요. 블라우스·셔츠는 60%, 캐시미어·터틀넥 등 니트류는 45%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롱스커트·맥시 원피스 62% △코트 15% △펌프스·슬링백 30% △부츠 15% △숄더백 15% 등 대부분의 제품군에서 드뮤어룩과 관련된 매출이 늘었습니다.
소재로 따지면 드뮤어룩에 가장 적합한 것은 '스웨이드'입니다. 스웨이드는 동물 가죽에서 바깥의 매끄러운 겉면을 제거하고 남은 안쪽 부드러운 부위로 만든 가죽의 한 종류로, 고급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가을·겨울(FW) 단골 소재이나 재킷, 코트, 가방, 신발 등 활용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최근 W컨셉 내 스웨이드 소재 적용한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400% 급증했습니다. W컨셉 관계자는 "드뮤어 트렌드에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고, 최근에는 스웨이드 무스탕 등 출시되면서 보온성이 더해져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드뮤어룩의 킥(Kick, 한방)은 신발이라는 걸 아시나요? 올가을 로퍼가 여성 고객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내기에 '로퍼'만큼 확실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로퍼는 1920~1930년대 유럽에서 시작한 신발로, 끈을 탈부착하지 않아도 되는 디자인으로, '게으름뱅이'라는 의미에서 로퍼(Loafer)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페니 로퍼, 벨지안 로퍼 등이 전통적인 스타일인데, 최근에는 끈으로 묶는 레이스업, 플랫폼(굽이 있는 스타일), 스트랩 디자인 등이 적용되면서 그 디자인이 다양해지고 있고요. 데님, 슬랙스, 스커트 등과 함께 여러 스타일링에 활용 가능해지면서 수요가 늘어난 거죠.
W컨셉에서 10월 10일부터 23일까지 약 2주 간 여성 로퍼 매출과 검색량 모두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 로퍼 △스웨이드 로퍼 △플랫폼 로퍼 △메리제인 로퍼 등이 상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왜 로퍼가 드뮤어의 '킥'일까요. 상·하의 톤을 맞춘 차분한 색감으로 단정하고 절제된 스타일링이 특징인 탓에 옷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모습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발인 '로퍼'를 통해 분위기를 더해주는 겁니다. W컨셉 관계자는 "신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로퍼가 패션의 한 끗 차이를 만드는 패션 템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로퍼가 분위기를 더해주는 키 아이템으로 관심을 끌면서 드뮤어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업계에서 당분간 드뮤어룩의 인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드뮤어룩이 가면 또 어떤 트렌드가 올지 궁금해지네요.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