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은 개인이 소유한 집을 공기업인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계속 살기만 하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현금을 매달 죽을 때까지 받는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가 살아있다면 배우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부부에겐 평생 넉넉한 현금을 챙길 수 있는 유용한 제도죠.
주택연금 가입자와 배우자가 살아생전에 매달 얼마씩 받을 수 있는지는 지난 '일확연금 노후부자' 기사("국민연금도 없는데 어떻게"…평생 月300만원 받는 방법 [일확연금 노후부자])에서 자세히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사망한 가입자의 주택연금을 이어받는 과정에 거쳐야 하는 중요한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자녀의 동의를 받는 일입니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한 이후 배우자가 주택연금을 그대로 이어받기 위해서는 가입자가 갖고 있던 주택의 소유권이 100% 배우자로 넘어가야 하는데,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녀도 공동상속인의 지위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배우자가 주택연금을 계속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볼썽사나운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어 보이죠. 물론 다달이 지급되는 주택연금 수령액은 가입자의 배우자만 승계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은 주택연금을 이어받지 못하지만, 그동안 가입자가 죽기 전까지 받아온 주택연금 월수령액에 이자까지 합친 금액을 모두 합쳐 되갚으면 주택 소유권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부모가 살아온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다면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사망한 주택연금 가입자의 배우자와 자식 간의 이견이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이런 분쟁으로 인해 생존해있는 배우자가 주택연금을 승계하지 못하고 빈곤에 내몰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2021년 6월 '신탁방식'의 주택연금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신탁방식으로 가입하면 가입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는 자녀의 동의 없이 그대로 해당 주택에 계속 거주하며 동일한 액수의 주택연금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보다 자세히 알아보죠. 2021년 6월 이후 주택연금 제도는 가입자가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저당권방식'과 '신탁방식'등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가입자나 배우자가 매달 받는 주택연금 수령액은 둘 중 어느 방식을 택하든 동일합니다.
다만 저당권방식은 앞서 살펴봤듯 가입자 사망 이후 배우자와 자녀 사이의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다분한 방식으로, 가입자가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택금융공사에 담보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저당권방식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주택의 등기상 소유자가 그대로 가입자이기 때문에 사망하면 소유권을 놓고 공동상속인(배우자·자녀) 사이의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신탁방식은 가입자가 주택금융공사에 주택을 신탁(소유권 이전)해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등기상 주택 소유자는 주택금융공사가 됩니다. 소유권이 주택금융공사로 넘어가지만 가입자는 신탁계약에 따라 연금수급권과 해당 주택을 거주·사용·수익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신탁계약을 체결할 때 '사후수익자'로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가 지정되는데, 이에 따라 가입자가 사망한 이후 가입자의 권리가 배우자에게 자동 승계됩니다. 배우자가 마음 편하게 자녀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주택연금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배우자의 연금승계 편의성처럼 신탁방식은 저당권방식과 비교해 여러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당권방식의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집주인(가입자)은 주택의 남는 공간에 반전세나 전세 세입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보증금이 없는 월세만 받을 수 있죠.
반면 신탁방식의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가입자가 집의 남는 공간에 월세뿐만 아니라 반전세와 전세 세입자를 들여 임대차 소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세입자가 낸 보증금은 집주인이 직접 운용할 수는 없습니다. 주택금융공사가 집주인 대신 금융회사에 보증금을 예치해 관리하고, 그 대가로 정기예금 수준의 운용수익을 집주인에게 지급합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이 기대할 수 있는 보증금 예치 수익률은 이달 기준 만기(1개월~2년)에 따라 연 3.48~3.49%입니다.
그렇다면 신탁방식은 저당권방식에 비해 장점만 있는 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신탁방식 주택연금으로 가입한 주택에 재건축 사업이 진행될 경우 가입자는 재건축조합 등으로부터 이주비대출과 조합원분담금대출 등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의 집주인은 가입자지만, 신탁방식에 가입하면 대외적 소유권은 주택금융공사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단점을 비교하기도 전에 이미 저당권방식 또는 신탁방식을 택한 기존 가입자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해 담보제공 방식을 사후에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당권방식에서 신탁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탁방식에서 저당권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전환 과정에서 근저당권 말소 비용 등이 몇만원 정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