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국민의힘이 ‘개정 반대’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동훈 대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상법 개정에 신중해 달라”는 건의에 ‘기업 발전을 훼방 놓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직설적인 반대 표현은 없었지만 ‘소송만 남발할 것’이라는 경제계 우려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줬다. 상법 개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 2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 대표 옆자리에 동석한 김상훈 정책위원회 의장도 “논리적 모순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고 거들었다. “기관·외국인, 사모펀드, 소액주주 등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에게 어떻게 다 충실할 수 있겠느냐”며 개정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었다. 야당의 거센 공세에도 정책 방향조차 정하지 못해 실망을 안겼던 무기력한 여당이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뒤늦은 입장 정리가 다행스럽지만 거대 야당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전히 걱정스럽다. 김 의장은 “정부 측과 얘기해서 좋은 대안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만약 일각에서 거론되는 ‘충실 의무’ 대신 ‘노력 의무’ 조항 신설을 대안으로 꺼내 든다면 돌이키기 힘든 패착이 될 것이다. ‘폐기’가 아니라 ‘적당한 타협’으로는 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라는 논리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사는 주주의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도 일선 경영 현장을 혼란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충실 의무와 다를 바 없다. 이사들은 ‘노력의 증거’를 남기기 위한 온갖 서류작업에 매달리며 면피성 의사결정으로 치달아 기업 활력 저하가 불가피해진다. 총리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 부처가 공히 상법 개정에 유보적인 이유다.
한 대표는 간담회에서 “기업 발전을 파격적으로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한 갈등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정책 주도권을 상실한 지금의 여당엔 버거운 약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조만간 밀어붙일 태세다. 논리적 모순이 분명한 상법 개정 저지가 힘 있는 정책 여당 위상 회복의 시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