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쓴 두 글자 '독립'…15년 만에 日서 왔다

입력 2024-10-23 14:00
수정 2024-10-23 14:06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삶의 마지막에 남긴 건 자신의 뜻을 담은 글씨였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는 이틀 뒤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됐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6일 순국하기 전까지 이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썼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유묵(遺墨·생전 남긴 글씨나 그림) 대부분이 이때 작품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지사인인 살신성인’(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인(仁)을 이룬다)…. 그 내용과 필체만으로도 안 의사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높은 기상, 절개가 그대로 느껴지는 유묵들이다.



안 의사의 이런 유묵 18점이 나오는 전시 ‘안중근 書’가 오는 24일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다.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이다. 전시된 유묵 중 보물로 지정된 작품만 13점에 달한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등이 전시를 위해 작품을 흔쾌히 빌려줬다.

안 의사의 유묵 여러 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 같은 기회는 흔치 않다. 곳곳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유묵 중 대부분은 수감 생활을 하는 안 의사의 기개를 존경하게 된 일본인 관리와 간수들이 “글씨를 하나 받고 싶다”고 부탁해 받은 것. 시간이 흐르며 이 유묵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 소장됐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인 ‘독립 獨立’도 마찬가지다. 이 유묵은 뤼순 지역에 파견돼 있다가 안 의사를 만나 교감을 나눴던 정심사(淨心寺)의 주지 마쓰다 가이쥰이 1910년 받은 것이다. 정심사는 보관해오던 유묵을 1997년 류코쿠 대학에 위탁했고, 이 대학이 지금까지 소장 중이다. 단 두 글자만 적혀 있지만 간결한 글자에 담긴 힘은 안 의사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9년 국내 전시 이후 15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전시는 안 의사의 시기별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안 의사의 출생과 성장, 종교 등 배경을 다루는 전시 1부에서는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라는 글씨를 통해 교육을 강조했던 안 의사 가문의 가풍을 조명한다.



안 의사의 애국 활동을 중심으로 한 2부는 ‘위국헌신 군인본분’, ‘장부수사심여철의사림위기사운’(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 구름 같도다) 등 비장한 각오가 담긴 작품들을 소개한다. 마지막 3부에는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시 추회하급’(동양을 보호하려면 정략을 고쳐야 하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등 안 의사의 사상을 담은 유묵들이 나와 있다.

유묵 외에도 전시장에는 안 의사의 삶과 관련된 자료 50여점이 나와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동양평화를 염원한 사상가, 백년대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입장료는 무료.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