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랑 '카꾸' 하러 왔어요"…입소문 나더니 '인기 폭발' [이슈+]

입력 2024-10-22 19:32
수정 2024-10-22 20:57

"평소 디즈니 애니메이션 광팬이에요. 직장 동료가 카드 꾸미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냥 구경 왔다가 저도 모르게 바로 구매해버렸네요."

서울 성수동 인근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이호정(32)씨는 22일 직장 근처의 한 '카드 꾸미기' 쇼룸을 찾았다.

그가 고른 카드 랩핑 디자인은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 '슬픔이'였다. 이씨는 "평소 나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좋아했던 캐릭터"라며 "나만의 카드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MZ(밀레니얼+Z)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교통 카드, 체크 카드 등 각종 카드를 꾸미는 이른바 '카꾸'(카드 꾸미기)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획일적이고 밋밋한 카드 디자인을 직접 고르면서 자신의 개성을 뽐낼 수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 "이건 어떤 회사 카드?" 묻더라…MZ 사이에서 '카꾸' 입소문이날 점심시간께 A 카드용 랩핑지 제작 업체가 운영 중인 쇼룸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곳은 최근 인기인 카꾸를 현장에서 직접 해볼 수 있는 곳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내부엔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영화 포스터, 연예인 사진 등 다양한 랩핑 디자인 견본이 전시돼있었다.

유심히 랩핑 디자인을 고르고 있던 20대 직장인 오모 씨는 "카드 두 장을 꾸밀만한 랩핑이 있는지 보러 왔다"며 "교통 카드는 디자인이 너무 칙칙하고, 체크카드는 최근 재발급받았는데 디자인이 영 아니더라. 랩핑 디자인 종류가 많아서 더 둘러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쇼룸 방문이 두 번째라는 20대 여성 이모 씨는 지난 7월 남자친구와 처음 이곳을 찾아 데이트 통장 카드를 꾸몄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도 커플 카꾸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의미도 있고 재밌지 않나"라며 "얼마 전엔 병원에서 꾸민 카드를 내밀었더니 원무과 직원이 '이건 어떤 회사 카드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각종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디자인 외에 명화를 담은 제품도 눈길을 끌었다. 가령 뭉크의 '절규', 요하네스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대표적이다. 이중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디자인의 랩핑을 구입했다. 원하는 디자인과 꾸밀 카드의 IC 칩 사이즈를 직원에게 말해주고 건네받은 제품을 체크 카드에 붙이니, 매일 쓰던 카드가 새로 발급한 카드처럼 느껴졌다.

'카꾸족'들의 취향이 제각각인만큼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두루 잘 팔리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기 좋은 디자인은 깔끔한 단색이란 설명이다. 다만 단색이라도 색감에 미묘한 변화를 줬다. 같은 검은색처럼 보여도 무광으로 처리됐거나, 보라색 계통이면서 채도가 다른 색들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표현한 식이다.


과거 한 카드사에서 일하다 직접 카드 전문 랩핑 업체를 차렸다는 고승훈 대표는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등 다소 마니아적인 지식 재산권(IP) 디자인도 들여놓고 있지만, 단색이 가장 많이 팔린다"며 "주말 평균 '단색 시리즈'만 100개 이상씩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다음으론 커플용 제품이 잘 나간다"며 "SNS를 통해 보고 데이트하러 왔다가 카드를 꾸미고 가는 고객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4월 본격적으로 문을 연 해당 쇼룸은 월평균 3000명 이상이 찾고 있다. 누적 방문자는 2만여명에 달한다.

특히 최근엔 서울시에서 발급한 기후 동행 카드를 꾸미러 오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올초 시범 운영을 거쳐 7월 본 사업에 들어간 해당 카드는 지난달까지 누적 충전이 503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달 26일에는 하루 평균 이용객이 62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쇼룸 직원은 "기후 동행 카드가 막 발급되기 시작할 땐 절반 이상이 해당 카드를 꾸미는 손님이었다"며 "누구나 다 들고 다니는 카드이고, 디자인도 똑같다 보니 당시 카꾸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인 제품 말고도, 직접 자신이 디자인을 커스텀 할 수 있는 '맞춤형 카꾸'에 나선 이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직접 찍은 사진을 넣거나, 직접 세부 디자인을 고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카드를 꾸민다.

고 대표는 "현재 온라인에서 맞춤형 커스텀 랩핑 제품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관심이 뜨겁다"며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인 랩핑 디자인이 1000개에 달하지만, 최근엔 아무래도 커스텀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계속 등장하는 'O꾸' 문화…"업계도 예의주시"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카드 꾸미기' 검색량 지수는 올초 30대에 머물렀지만, 이후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 5월 1일 100을 찍기도 했다. 이달 17일에도 90을 찍으며 관심도가 꾸준했다. 해당 지표는 가장 검색량이 많은 날을 100으로 두고 상대적인 추이를 나타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텀꾸(텀블러 꾸미기)에 이어 등장한 카꾸는 그만큼 MZ 세대가 각종 물건을 꾸미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추세에 카드 업계 역시 MZ 세대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디자인 경쟁'에 나선 모양새다. 하나카드는 오는 31일까지 '제2회 하나카드 플레이트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이는 직접 소비자에게 카드 디자인을 신청받아 실제 카드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 신한카드 역시 인기 캐릭터 '미니언즈'를 활용한 카드 디자인을 내세워 주목받기도 했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카드에 있어서도 MZ는 독특하고 남과 다른 멋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직접 카드를 꾸미는 문화까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계도 이에 발맞춰 MZ 세대들의 카드 발급률을 높이기 위해 새롭고, 선택의 폭을 넓힌 여러 디자인을 카드에 적용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