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한 대표의 독대 요청 한 달 만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마주 앉았지만 ‘빈손 회동’으로 끝났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각종 의혹 해소 노력, 특별감찰관 임명 등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김 여사가 대외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게 아니냐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적 쇄신 요구에도 “의혹만 나왔을 뿐 구체적으로 확인된 게 없지 않냐”며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놨다.
이날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은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약 80분간 이어졌다. 두 사람은 파인그라스 주변을 10여 분간 산책한 뒤 차담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기대를 모은 회동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윤·한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정하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은 면담 이후 브리핑에서 “한 대표는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악화하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의 필요성 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여사 이슈 해소와 관련해 앞서 밝힌 세 가지 방안(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해소)과 특별감찰관 진행 필요성을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당초 회동 결과를 브리핑할 계획이었던 한 대표는 회동 직후 귀가했고 박 실장이 대신 브리핑했다. 국민의힘에서는 한 대표가 회동 결과에 불쾌감을 표현하기 위해 브리핑을 취소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 실장은 취재진 질문에 “제가 배석하지 않았고 대표 구술을 받은 것이라 답변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회동을 마친 한 대표의 분위기를 묻는 말에도 “해가 진 상황이라 한 대표의 표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답을 피했다.
대통령실은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성의 있고 진지하고 차분하게 경청하고 설명했다”며 “빈손 회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인적 쇄신 등 한 대표 요구사항에 대해 즉석에서 답하기는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친한(친한동훈)계는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한 친한계 의원은 “당초 한 대표는 독대를 원했는데 비서실장이 배석했고, 만남도 80여 분에 그쳐 형식부터 실망스러웠다”며 “정부에 쇄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친한계 인사는 윤 대통령 맞은편에 한 대표와 정 실장이 나란히 앉은 구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대표를 ‘카운터파트’로 인정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면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만남 자체가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정 관계의 균열을 파고들어 김 여사 특검법을 다시 한번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표를 향해 “오늘 면담을 잘하시고, 기회가 되면 야당 대표와도 한번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약 3시간 뒤 “회담에 흔쾌히 응하겠다”고 답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회동 직후 브리핑을 하고 “한 대표에게 이제 남은 판단은 윤 대통령과 공멸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도병욱/정소람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