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부진에 스윙 바꿔…겁없는 '도전 DNA'가 우승 비결"

입력 2024-10-21 18:17
수정 2024-10-22 00:14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선수가 오래간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조금씩 변하기 마련인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줘야 롱런할 수 있어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만 통산 21승을 거둔 ‘골프 여제’ 박인비(36)도 최근까지 스윙을 바꾸는 등 계속 변화를 추구했다고 한다.

박보겸(26)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는 올 시즌 초반 생각한 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자 과감하게 스윙에 변화를 줬다. 샷을 회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간도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지난 6월엔 4개 대회 연속 커트 탈락할 정도로 힘든 시기도 겪었다. 올 시즌 커트 탈락 횟수만 15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변화에 대한 도전을 이어간 박보겸은 지난 20일 경기 이천시 사우스스프링스CC에서 끝난 상상인·한경 와우넷 오픈을 제패하며 꿈에 그리던 통산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박보겸은 “선수는 계속 도전하고 변화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며 “저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괴로운 과정이었음에도 얻을 게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든 과정을 우승으로 보답받을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덧붙였다. 사이판 체육소녀 골프를 꿈꾸다박보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과 함께 사이판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때부터 변화가 익숙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낯선 환경이 무섭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자연환경에 푹 빠져 금세 사이판 생활에 적응했다고 한다.

박보겸이 운동선수로 꿈을 키운 곳도 사이판이었다. 방과 후 교실 때 축구, 농구, 배구, 테니스, 육상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는데, 모든 종목에서 학교를 대표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났다. 사실 처음에 골프는 관심 밖이었다. 테니스 선수를 꿈꾸다가 어머니의 연습장에서 우연히 잡은 골프채가 운명이 될 줄 몰랐다. 그는 “재미 삼아 한번 휘둘러 봤는데 공이 너무 잘 맞았다”며 “재능이 있다고 느꼈고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은 공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거리로 보낼 수 있는 골프의 매력에 점점 빠진 박보겸은 유튜브로 독학하면서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제대로 골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설득해 가족 모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때 나이가 열다섯이었다. 출발 늦은 만큼 연습에 올인박보겸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골프 선수의 길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또래보다 5~6년 늦게 골프를 시작했기에 경쟁자들과의 격차가 너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동갑내기 박민지(26)도 그중 하나다. 박보겸은 당시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던 박민지를 대회장에서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좌절은 없었다. 박보겸은 격차를 빠르게 좁힐 방법만 고민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연습이었다.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고 더 많은 샷을 해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보겸은 “연습장에 제일 일찍 나오고 제일 늦게 퇴근하려고 노력했다”며 “사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워낙 다양한 경험을 해서 골프를 포기하거나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고 돌아봤다.

박보겸은 투어 데뷔 4년 차인 지금도 골프에만 올인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어떻게 골프를 더 잘 칠까’라는 고민만 했다. 이번 우승 때도 마찬가지다. 인터뷰 후 곧장 연습하러 간다는 박보겸은 “남은 3개 대회에서 또 다른 우승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체력이 되는 한 더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가 되고 싶다”며 “골프를 하는 게 여전히 가장 재미있고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오래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