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북한군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을 공식 발표한 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북한군이 러시아 군수물자를 지급받는 영상을 공개하는 등 파병 정황이 추가로 속속 포착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배경과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파병을 통해 ‘러시아 특수’를 노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를 도우며 외화벌이를 하는 동시에 ‘상호 군사 원조’의 명분을 쌓아 첨단 핵기술 이전 등 군 현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1) 북한, 뭘 노리나20일 한국경제신문이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북한이 이번 파병으로 노리는 건 ‘북·러 혈맹’이다. 북한은 경제·군사 등 다방면의 성과를 노리고 있다. 우선 외화 획득으로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취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병력 부족을 겪는 러시아는 자국 청년을 입대시키기 위해 생존수당 등을 높게 쳐주고 있는데, 원체 경제 수준이 낮은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군이 이 정도 소득만 벌어들여도 엄청난 루블화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특수’와 함께 한국군이 1970년대 베트남전 파병으로 누린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이 베트남 파병으로 군 현대화를 이루고 실전 경험을 쌓은 것처럼 북한도 첨단 무기체계를 전수하면서 이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2) 러시아 전세 유지에 도움될까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도 잃을 게 없어 북·러 간 ‘이해관계 일치’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1만 명 단위의 병력이 전선에 추가로 투입되면 러시아가 전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러시아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최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북한군은 사회의 특성상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군인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예상보다 강한 전투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지난 6월 맺은 북·러 신조약이 비준되지도 않은 상황인데, 이번 파병으로 향후 북한이 남침을 감행하고 러시아의 참전을 요구할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다”며 “병력 소모가 많은 이번 전쟁의 특성을 고려하면 총알받이든 아니든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군이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3) 북·러 파병 사실 인정할까향후 북한과 러시아는 파병 사실을 최대한 부인하거나 모호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발표가 있었지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확인 불가’라며 신중론을 펼치는 상황에서 굳이 파병을 인정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북·러가 나란히 ‘포괄적 군사협력’이라는 등 애매한 용어를 사용해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박 교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 오리발을 내밀 것”이라고 전망했다. (4) 국정원 이례적 발표 왜?국정원이 파병 사실을 사진까지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을 두고는 북·러가 빠른 속도로 밀착하는 데 대해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정 센터장은 “우리가 중요 정보를 갖고 있으니 국제사회가 더 경각심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라고 했고, 임 교수는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해 러시아가 ‘멈칫’하게 만들고 문제가 더 확대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5) 한반도 안보에 어떤 의미북한의 파병으로 우리 정부의 대응 방정식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단기적으로는 북한과 러시아가 일종의 ‘레드라인’을 넘으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강해질 수 있다. 전쟁이 더 장기화하면 한국도 빨려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 파병을 두고 “세계대전의 첫 단계”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서방의 강력한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러시아에서 첨단 핵기술을 전수하고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참전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