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로 떠나는 조각투자 기업들, 질식당하는 혁신

입력 2024-10-20 17:21
수정 2024-10-21 00:21
부동산, 미술품 등 고가 자산을 쪼개 사고파는 ‘조각투자’ 분야 기업 대부분이 국내 사업을 중단하고 있다. 이미 관련 기업 수십 곳이 사업을 접거나 해외로 나갔다. 제도권 편입이 늦어지면서다. 자본시장의 새로운 획을 긋는 혁신산업을 선점하겠다는 꿈도 산산조각 나 버리는 답답한 현실이다.

조각투자란 대상 자산을 여러 지분으로 쪼개 불특정 다수가 투자하도록 증권화한 것이다. 암호화폐 기술인 블록체인과 결합해 토큰증권(ST)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ST시장은 올해 1조5000억달러에서 2030년 16조1000억달러(약 2경200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다음 세대의 증권과 시장은 ‘자산의 토큰화’가 이끌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도 저작권, 한우 등과 관련해 다양한 조각투자 기업이 등장했고, 정부의 제도화 계획에 따라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2022년 사실상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된 일부 업체만 사업할 수 있도록 길을 좁힌 데다, 기존에 해오던 상품의 2차 거래(최초 청약 이후에 하는 투자자 간 거래)를 금지하면서 시장이 위축됐다. 정부와 국회가 후속 입법을 통한 2차 거래 허용을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조각투자를 토큰증권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간 큰 이견이 없었는데도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이번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안 됐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부터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까지 제도 미비나 기득권 집단의 저항에 좌절된 혁신사업은 한둘이 아니다. 조각투자도 법적 인프라 구축이 지연되면서 싹이 잘릴 위기다. 기본적인 할 일조차 안 하는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