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를 달리면 축구장 5개를 합친 크기의 웅장한 강철 건물이 나타난다. 핀란드 이동통신 회사인 텔리아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다. 북유럽 최대 규모다. 24시간 열을 내뿜는 서버 등 정보통신기술(ICT) 장비가 20만 개, 이것들을 담은 캐비닛만 5000개 이상인 이 거대한 구조물은 글로벌 빅테크가 주목하는 시설이다.
핀란드는 폐열을 난방으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를 도시의 필수 인프라로 탈바꿈시켰다. 텔리아 데이터센터가 온기를 보내는 가정과 사무실은 7000여 곳에 달한다. 폐열을 시장에 팔아 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있다. 설계 때부터 데이터센터와 도시의 공존에 초점을 맞춘 핀란드의 ‘그랜드 디자인’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가 핀란드로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수도권의 데이터센터 진입을 막아놓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공기 중 열 잡아내는 기술지난달 방문한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 ‘컴퓨터의 방’ 내부는 25~26도 정도였다. 서버가 뿜는 열기가 35~45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로 선선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핀란드의 첨단 열회수 시스템이다.
카리 마이콜라 텔리아 데이터센터 솔루션 부문장은 “다른 나라의 데이터센터는 전력의 40% 정도를 장비 냉각(기계 냉각)에 사용한다”며 “텔리아는 내부를 기계 냉각하는 대신 폐열을 지역난방에 활용하고, 이를 다시 냉각수로 전환함으로써 냉각 비용을 한 달에 수만달러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폐열 회수의 핵심 기술은 열교환기다. 텔리아와 협업한 헬렌은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다. 열교환기는 서버에서 발생한 열을 공기 중에서 포집하는 역할을 한다. 열교환기에 모인 뜨거운 열기는 얇은 금속 막을 통해 냉각수로 전달돼 지역난방시스템용 난방 에너지로 전환된다. 텔리아는 이 과정에서 밖으로 나가는 데워진 냉각수를 ‘칠러’를 통해 다시 차갑게 만들어 열을 회수하는 순환 과정에 재투입하고 있다. 마이콜라 부문장은 “현재 텔리아는 폐열의 60%를 재사용하고 있다”며 “연내 이 수치를 8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환된 폐열은 새로운 난방 시장을 형성했다. 헬렌은 폐열을 가정, 기업 등 난방 수요자에게 되판다. 일반 난방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탄소 중립 실천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작년부터 시작한 폐열 회수 시스템은 1년도 안 돼 약 7000개의 가정과 사무실에 폐열을 보내고 있다. 마이콜라 부문장은 “머지않아 2만 가구에 공급할 예정이며, 이는 연간 1000만 회 이상 따뜻한 샤워를 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성’을 수익으로 전환폐열을 활용하는 혁신은 핀란드 데이터센터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탄소 감축을 원하는 글로벌 IT 기업이 핀란드에 서버를 설치하려고 몰려들 정도다. 빅테크들은 아예 핀란드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MS는 핀란드 국영 에너지그룹 포르툼과 협력해 헬싱키 지역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발생하는 폐열을 지역난방 시스템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약 10만 가구와 기업에 난방을 제공하며, 연간 40만t의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글 역시 핀란드 하미나 지역의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회수해 지역난방 네트워크에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구글의 첫 번째 열 회수 프로젝트로, 데이터센터의 열을 인근 지역 사회에 무료로 공급해 지속 가능한 난방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폐열 기술은 핀란드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난방 에너지를 전달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데다 추운 기후 탓에 열교환기 등 열회수 기술이 오래전부터 발달했다. 야니카 율리카르율라 VTT 기술연구센터 국제 업무·정책 부사장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핀란드는 ‘지속가능성’에 미래를 걸고 있다”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는 재생에너지 기술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에너지 혁신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