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한반도의 군사 긴장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북·러 신조약 체결을 통해 사실상 군사 동맹을 맺은 양국의 ‘상호 군사 지원’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북한이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론적으로는 한반도 유사시에 러시아가 참전할 길도 열렸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파병으로 전쟁이 더욱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北, 실전 능력 쌓을 기회”국가정보원은 18일 “지난 8월 북한 미사일 개발의 핵심인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북한군 장교 수십 명과 함께 수차례 러시아 전선 인근의 북한 ‘KN-23’ 미사일 발사장을 방문했고, 현지 지도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8월부터 이미 국정원이 파병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후 면밀한 추적 끝에 지난 8일 파병이 개시된 것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김정식은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규모 무기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이때 이미 파병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지난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실상 파병에 최종 합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번 파병으로 전쟁터에서 무기를 시험하고 ‘실전 능력’을 기르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무기를 다뤄보고 전투 능력을 기르는 게 북한에는 파병의 중요한 의도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군 병력을 보낸 건 처음이지만 무기 지원은 여러 차례 이뤄져 왔다. 지난해 8월 이후 총 70여 차례에 걸쳐 1만3000개 이상 컨테이너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에 따르면 그간 포탄 800만 발 이상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韓, 우크라에 살상 무기 지원하나북한의 파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만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북·러 신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6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사실상 북한군이 참전한 상황에서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만큼 무기 지원이 실행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한·러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파병은 러시아군이 전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병력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북한 병력이 투입될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점령하면서 양측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이 지상군 등 여러 인력을 합해 병력 1만 명을 준비하고 있다”며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군사 위협을 이어갔다. 이날 북한은 김 위원장이 전날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군사 작전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철저한 적국인 한국으로부터 우리의 주권이 침해당할 때 물리력이 거침없이 사용될 수 있음을 알리는 마지막 선고”라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북한이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러시아 군사 지원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분단 이후 가장 큰 전략적 대치 구도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종우/김동현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