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돈에 쪼들린 도스토옙스키…허무에 시달린 톨스토이

입력 2024-10-18 18:24
수정 2024-10-19 01:05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은 돈이 전부인 세상을 직시하며 돈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돈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는 동시에 돈을 넘어서는 절대 불변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에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책을 다수 번역한 석 교수는 한국에서 첫손에 꼽히는 러시아 문학 전문가다. 그는 이 책에서 도스토옙스키 작품과 그의 삶을 살펴본다.

도스토옙스키가 당대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항상 돈에 쪼들렸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민중을 교화하고 인류에게 신의 섭리를 전달하고 예술의 전당에 불후의 명작을 헌정하려는 거룩한 목적이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선불로 받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썼다. 즉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독자의 기호와 시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대 사회와 일반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 그에 부합하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놀라운 혜안으로 돈을 이해하고 당대뿐 아니라 미래의 인류 사회에서 돈이 수행하는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 봤다.

그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돈이 지배하는 현실적인 관계를 그리는 한편 끊임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관계를 꿈꿨다. 그의 작품이 철저하게 이중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석 교수가 이 책과 함께 펴낸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톨스토이를 다룬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엔 술과 도박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중년기에 접어들며 기독교적 가치관에 깊이 영향받아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안나 카레니나>다. 석 교수는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인생 전환기를 예고하는 작품”이라며 “사랑, 결혼, 종교, 윤리, 예술, 죽음, 인생에 관한 그만의 가치관이 다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톨스토이는 안나의 죽음을 통해 상류의 모든 것,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 생활 태도, 사랑과 연애, 결혼, 예술관과 음식까지 비판하며 ‘잘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이후 톨스토이는 실제로 그가 소설 속에서 비판한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톨스토이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고,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90권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제도를 부정했다.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책은 이런 톨스토이의 고통스러운 모순이 남겨준,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가치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