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숲은 육지의 30%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육상 생태계의 80%가 숲에 의존한다. 산림은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자연환경 재해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며 깨끗한 물 공급에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유럽연합(EU)은 산림을 파괴하는 주요 품목과 관련한 제품의 10%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다음인 세계 2위 규모다. EU는 산림전용 및 황폐화, 생물다양성 손실에 대한 EU 시장의 영향을 제한하고, 산림전용이 없는 공급망을 촉진하기 위해 온실가스배출에 대한 기여도를 줄이고, 인권과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의 유럽연합 산림전용 방지규정(EU Deforestation-Free Products Regulation, EUDR)을 도입했다. 세계 최초의 법인 EUDR을 통해 EU는 연간 최소 3200만 톤의 CO2 배출량을 줄이는 목표를 수립했다.
삼림 전용 방지 의무 이행 요구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규제 대상 제품은 소,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대두, 목재 등과 이 품목을 포함하거나 공급, 사용해 만든 파생 제품으로, 각 품목별 파생 제품은 EUDR 부속서 I에 명시되어 있다. 규정 발효 이전인 2023년 6월 29일 이전 생산된 제품에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상 제품이 규정에서 명시한 이른바 ‘산림 전용 금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EU 시장에 출시 또는 공급하는 행위 또는 EU 회원국에서 역외로 수출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산림 전용 금지 조건이란 산림을 전용하지 않고 생산하거나, 생산국의 관련 규정을 준수해 생산하거나, 실사 보고서(Due Diligence Statement)를 제공하는 경우다.
시장 출시는 EU 시장에서 7개 품목 및 이들 품목을 포함·공급·사용해 만든 관련 제품을 처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장 공급은 대가를 받고 또는 무료로 EU 시장에서 상업적 활동의 일환으로 유통, 소비 또는 사용할 목적으로 관련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 대상 품목으로 생산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거나 수출하는 주체인 ‘운영자(operator)’와 사업자를 제외한 공급망 참여 주체인 ‘거래자(trader)’는 규정에서 정한 산림 전용 방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의무 사항에 차이가 있다. 먼저 사업자의 경우 산림 전용 금지 조건 충족을 입증하기 위해 실사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이를 통해 입증된 경우 국가별 관할 당국에 실사 보고서를 제출해야 EU 시장 출시 및 역외 수출이 허용된다.
결국 공급망 실사 규제와 맥락이 닿아 있다. 운영자의 경우 규제 제품과 관련한 지리 정보를 포함한 주요 정보를 필수적으로 수집 및 보관해야 하며, 이를 보유한 경우에만 해당 제품을 EU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운영자의 실사의무는 구체적으로 정보 제공 의무, 위험 평가 의무, 위험 완화 의무가 포함되며, 최소 연 1회 이상 위험 평가를 문서화하고 관련 기록을 5년간 보관해야 한다.
이를 위반 시 운영자와 거래자는 미준수 요건 시정, 해당 제품의 출시 금지·회수·공익 목적으로 기부하거나 폐기 등 시정 조치 이행, 벌금, 이익 몰수, 최대 12개월간 공공사업 참여 제한 등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 벌금은 환경 피해 정도와 규제 품목 및 제품의 가치에 비례해 부과되며, 법인의 경우 최대 벌금액을 벌금 부과 이전 회계연도 연간 총매출액의 4% 이상으로 산정한다. EUDR은 12월 30일부터 적용되며, 중소기업의 경우 2025년 6월 30일부터 적용된다.
한국·넥센타이어 등 국내 기업 우려
EUDR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경우 현재 대상 품목상으로는 당장 한국산 농축수산식품의 EU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EU 의회는 돼지, 양, 염소, 가금류, 옥수수 등도 대상 품목으로 제안한 바 있어 향후 대상 품목이 확대될 경우 우리 농산물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기업 중 유럽 시장에 대상 제품을 판매하거나 수출하는 기업은 2024년 12월 전 EUDR 준수에 필요한 명시적 실사 체계, 해당 제품 및 원자재의 지리 정보 등 필요한 정보를 갖춰야 한다.
지난 8월 한 글로벌 금융서비스 회사는 분석을 통해 EUDR로 우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을 꼽았는데, 여기에는 국내 기업 중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가 포함되었다. 저자가 인터뷰한 국내 한 중견기업 또한 고무 제품 제조사로, 이미 EU 고객사의 요구에 의해 EUDR에 대응하고 있었다. 가장 큰 난점으로 비용적 측면과 벤치마크 사례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또 고객사들은 법 적용 이전부터 이미 규정 준수를 요구하고 있는데, 제3자 검증 등 EUDR보다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거나 고객사별로 각기 다르게 요구함에 따라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EUDR 시행을 앞두고 시행을 미루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거센 요구가 이어졌다. 미국·독일·오스트리아·브라질·중국 등 국가와 유럽제지산업연맹, 유럽코코아협회 등 경제 단체들이 규정의 중단 또는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결국 지난 10월 2일 EU 집행위원회는 이 규정의 시행을 1년 연기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즉 대기업은 2025년 12월 말, 중소기업은 2026년 6월 말부터 규정을 적용한다는 방안이다. 이것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와 함께 위원회는 국가 당국, EU 사업자 및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제공하는 100쪽에 달하는 Q&A 실무 문서를 발간했는데, 필요한 것은 연기가 아니라 구체적 가이드라인이라는 입장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 등 국가와 EU 사회당, 녹색당 등 정당, BMW, 네슬레, 이케아 등 각 품목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EUDR을 예정대로 시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경우 이미 오랫동안 공급망 관리와 대응을 해온 바 규제가 시행되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춘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이 야심 찬 규제가 결국 지연되는 것일까? 이미 18개월의 전환 기간을 거쳤고, 한국의 부품 기업까지 법 시행 전부터 법에 준해 또는 더 강화된 형태로 EUDR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또 보다 포괄적인 공급망 실사를 요구하는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도 발효되어 202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지속가능성 공시처럼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흐름이 된 공급망 실사 규제를 국가 차원에서도 선행적으로 준비하고 시스템 구축을 통해 기업이 보다 일원화되고 간소화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