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들썩이게 한 흑·백수저 듀오…알고 보니 '각별한' 인연 [인터뷰+]

입력 2024-10-19 12:21
수정 2024-10-19 13:12

"이 조리복도 준우 형이 선물해준 거예요."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셰프)
"요즘엔 저보다 임 셰프가 훨씬 바쁘죠. 오늘도 네 덕에 인터뷰하네. 고맙다." (박준우 셰프)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그린 예능이다. 맛은 최고라고 평가받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맞붙는 경쟁 구도를 그렸다.

그런데 현실은 둘도 없는 '십년지기 동네 친구'였다. 의외의 조합이었다. 백수저로 등장한 박준우(41) 셰프와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로 출연한 임태훈(39) 셰프의 이야기다.

임 셰프는 2년 전 박 셰프가 가게 위치를 고민할 당시 자신의 업장 근처 도보 5분 거리에 자리가 났다며 박 셰프를 서촌으로 데려왔다.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흑백요리사' 출연 제의를 먼저 받았던 박 셰프가 제작진에 임 셰프를 소개했다. 이 덕에 함께 출연하게 됐고, 앞서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로 이름을 알린 박 셰프의 뒤를 이어 임 셰프도 스타 셰프로 등극했다.

18일 점심께 박준우 셰프의 디저트 카페인 서촌 '오쁘띠베르'서 두 셰프를 만나 이들이 친해진 배경, 흑백요리사 출연 계기, 숨은 에피소드 등을 들었다.


다음은 박준우 셰프(이하 박), 임태훈 셰프(이하 임)와 나눈 일문일답.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 서촌에서 디저트 카페 겸 와인바 '오쁘띠베르'를 운영하는 박준우입니다. 식품 분야 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12년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1'(이하 '마셰코')에서 준우승해, 이후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 출연했습니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선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했습니다. 참고로 방송은 제가 나온 부분까지 봤어요.(웃음)

임: 서촌에서 중식당 '도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성시경 씨의 유튜브 '먹을텐데'에서 식당이 소개되면서 매스컴을 탔고요. 이번에 '흑백요리사'에서 '철가방 요리사'로 출연했습니다.

▶요리엔 어떻게 입문하셨나요.

박: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처음에는 인문학을 전공했다가, 이후 프랑스로 넘어가 요리와 제과제빵을 배웠습니다. 불어 수업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임: 배달원으로 시작한 생계형 요리사입니다. 일하던 식당서 우동을 처음 만들었는데, 그게 빈 그룻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요리에 꽂혔죠. 20대 초반에는 아버지가 하시던 귀금속 기술도 배워봤는데, 요리에 미련이 계속 남아 치킨 배달, 양식당 등 전전하면서 요식업에 발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식당의 '칼판장'(중식당 주방 내 직역)으로 취업했고, 당시 저만큼 젊은 사람이 없길래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해 중식에 몰두했습니다.

▶두 분 모두 서촌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우연인가요? 서로 친해진 계기도 궁금합니다.

박: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제가 '마셰코' 이후 2013년 서촌에 '오쁘띠베르'로 동명의 카페를 차렸다가, 2017년께 문을 닫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 연희동에서 레스토랑도 했다가, 2022년에 다시 서촌 통인동으로 돌아왔죠. 2년 전에는 임 셰프가 서촌에 자리를 알아봐 줬습니다.

임: 2013년 서촌에 '오쁘띠베르'가 있을 때, 바로 옆 중식당에서 제가 근무하고 있었답니다. 준우 형은 저를 몰랐지만 전 알고 있었죠. '마셰코' 나온 요리사가 옆집이라니 신기하잖아요. 제가 그때 준우 형 가게 레몬 타르트에 빠져서 자주 사 먹기도 했습니다. 서로 가게를 오가는 동네 이웃으로 지내다가, 안면을 튼 지 2년 만에 말을 놨고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저도 2014년부터는 서촌에서 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처음엔 '아량'을 운영했고, 2022년에 2호점으로 지금의 '도량'을 차렸죠. 두 가게를 모두 운영하기에 벅차서 1호점인 아량은 올해 문을 닫았습니다.

▶두 분 '흑백요리사'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나요.

박: 우선 전 '마셰코' 준우승자 자격으로 섭외 연락을 받았습니다. 넷플릭스라는 점이 신선해서 출연하게 됐고, 제작진이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임태훈 셰프에게 참가를 권했죠.

물론 잘하시는 분 많지만, 임태훈 셰프 실력은 제가 아는 중식 셰프 중 세 손가락 안에 듭니다. 원래 서촌에서 정말 유명했어요. 아량이 문을 닫을 때 주변 중식당이 좋아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어요. 지금 도량이 엄청 바빠지면서 저도 동파육을 못 먹고 있습니다. 저도 대기하라던데요.(웃음) 농담이고 임 셰프 잘 돼서 너무 기쁩니다.

임: 준우 형이 권유했을 때, 사실 처음엔 거절했어요. 당시 새벽까지 일할 정도로 가게가 너무 바빴거든요. 거절해도 계속 권유하시니 마지막에 형한테 "아내 허락 받아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근데 그때 형이 제작진한테 연락처를 전달하셨더라고요. 작가님이랑 연락하면서 결국 지원서도 쓰게 됐고, 출연이 성사됐습니다.

▶팀이 나뉜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박, 임: 몰랐습니다.

박: 돌아보면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습니다. 전 그냥 제 옷 입고 갔는데, 옷을 갈아입으라 하더군요. 그러곤 세트장 2층으로 안내하더니…그다음부터는 보시던 오프닝 그대로입니다. 전 규칙을 들으면서 심란했어요. '이러다 요리 하나도 못 보여주고 끝나겠는데?' 싶더라니까요.

임: 규칙을 듣고, 한 번은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팔보완자' 메뉴는 가게 단골만 드시던 숨은 메뉴였거든요. 그 메뉴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어요.

▶임 셰프님은 가장 많은 명장면을 낳은 분이 아닐까 싶어요. 여경래 셰프께 절하신 것부터, 최근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인터뷰까지요.

임: 아직도 여 사부님을 이겼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 요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게 여 사부님의 책이거든요. 하늘 같은 존재였는데 바로 앞에 계시니까요. 절은 당연히 해야 해요. 방송 마치고 여 사부님 식당에 찾아뵙고 인사도 했습니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시민 인터뷰도 우연이었어요. 그날도 동파육 만들다가 밤 10시쯤 골목에 나왔는데, 골목을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뉴스 촬영팀이 다 저만 쳐다보고 계시더라고요.

▶2라운드 흑백대전에서 박 셰프님의 '건표고 리소토와 사블레 그리고 크림'이 아쉽게 편집됐는데, 어떤 요리였나요?

박: 건표고로 채수를 내고, 불린 건표고를 볶아 식감을 살린 통밀 리소토와 크림, 버터로 마무리한 요리였습니다. 비하인드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마지막 조에 속했었어요.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인데 거의 밤 11시에 요리를 시작했죠. 체력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이긴 했습니다. 경연 재료로 가져간 화이트 와인을 살짝 마시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방송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준우 셰프는 컬리와 협업해 오쁘띠베르의 디저트를 가정간편식 형태로 출시하는가 하면, 그의 도서 '식탁 위의 작은 순간들'도 서점가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임태훈 셰프는 최근 백종원 심사위원과 함께 ENA의 새 예능 '레미제라블'의 출연을 확정 지었다.

▶방송을 통해 얻은 것과 애로사항이 궁금합니다.

박: 사람이죠. 함께 참가한 셰프님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었고 친해진 분도 계시고요.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게 좋아요. 애로사항은, 아무래도 넷플릭스 프로그램이다 보니 해외에 있는 친구들한테도 연락이 옵니다. 전 금방 떨어지니까, 연락받으면서 괜히 머쓱하더라고요. "나 일찍 떨어져"라고 자꾸 스포아닌 스포를 하게 됩니다.

임: 새로운 인연을 쌓았다는 점에서 저도 준우 형과 같은 의견입니다. 애로사항이라면 촬영 중에는 3~4kg 정도 살이 빠지긴 했습니다.

▶방송 이후 일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추후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박: 이번 방송을 보시곤 주변 분들이 오히려 "요리 설명은 제일 잘하더라"라고 말씀 주시던데요. '요리캐스터'라는 직업을 만들어 전향해볼 수 있나 알아볼까 봐요. 저도 그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제 인생 모토가 본래 '가늘고 길게'입니다. 별다른 일 없으면 전 늘 가게에 있답니다. 해외 팬분들도 많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 마음 잃지 않고 일하고 싶습니다.

임: 수면이 부족한 상태이긴 합니다. 전날도 새벽 4시까지 일하는 바람에 4시간 자고 나오긴 했어요. 그런데 퇴근하는 와중에 보니 가게 앞에 대기하시는 손님이 있더라고요.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더 열심히,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훗날 후배 양성을 해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