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이곳에서 홍수가 발생한 건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사하라사막 지대에 50년 만에 이례적인 폭우가 내려 홍수가 발생했다.” 기후위기로 전 세계 곳곳이 심각한 기상재해를 겪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다반사처럼 돼가고 있다. 한동안 미국의 허리케인 공포가 지구촌을 강타하더니 지난주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홍수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을 나타내우리 언론도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런데 이들 문장은 평범한 듯해 보이지만 사실 온전치 않은, 미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만’의 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서 ‘만’은 흔히 쓰는 일상의 말이지만 의외로 용법이 까다롭다. 가짓수도 많다. 형태는 똑같은데 의미와 문법적 기능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의존명사 ‘만’과 조사 ‘-만’을 구별해야 한다. 일단 조사 ‘-만’은 다시 무엇을 강조하거나 어느 것에 한정됨 또는 비교의 뜻을 나타낼 때 쓰는 것(‘그 사람만 왔다/만져만 보겠다/이것은 저것만 못하다’에 쓰인 ‘만’)과 ‘-마는’의 준말로서의 ‘-만’(‘먹고는 싶다만 돈이 없다/하기는 하겠다만~’ 등에 쓰인 ‘-만’)으로 나뉜다. 두 경우에 따라 의미 용법이 달라진다.
이들은 다른 기회에 들여다보기로 하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특히 의존명사 ‘만’의 용법이다. 이 말은 흔히 ‘만에’, ‘만이다’ 꼴로 쓰여 ‘앞말이 가리키는 동안’을 나타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말 뒤에서 쓰인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게 ‘만’의 의미는 그 ‘동안의 흐름’ 전에 어떤 행위가 먼저 있었음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가령 “그가 10년 만에 귀국했다”라고 하면 그가 10년 전에 출국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이 ‘만’ 용법은 전후 대구(對句)가 되는 문형을 띠는 게 전형적 방식이다. 가령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떠났다” “헤어진 뒤로 3년 만에 만났다” 같은 식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불꽃축제가 열렸다. 이를 ‘만’을 이용해 표현해보자. “코로나19로 중단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3년 만에 다시 열려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 문장을 통해 읽는 이는 3년 전, 즉 2021년에 중단되기 전 마지막 불꽃축제가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전에 유사한 일 있었음을 전제해마찬가지로 사하라 사막의 홍수 보도에서 “50년 만에 폭우가 내렸다”라고 하면 50년 전에 유사한 폭우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기후위기를 전하는 관점에서 보면 큰 의미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 중요하다. 과거에도, 비록 반복되는 ‘동안’이 길기는 하지만 전에도 이미 홍수가 있었다면 그것이 매우 이례적 사건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일이긴 하겠지만). 즉 ‘사실 여부’에 대한 팩트 확인이 필요한 부분인 셈이다. 가령, 그전에는 데이터가 없다든가 또는 사하라 사막 폭우를 관측하기 시작한 게 불과 50년밖에 안 돼 ‘5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면 그 사실을 명시해줘야 한다. 그래야 의미 전달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단행된 기준금리 인하 조치를 전한 다음 기사문에서도 이런 ‘만’의 표현 방식이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일 3.5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p) 내렸다. 2021년 8월 이후 지속해온 통화 긴축 기조를 3년 2개월 만에 푼 것이다. 금리인하 조치 자체는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만’ 용법은 이렇게 전과 후의 대구를 이루는 말과 함께 써야 분명해진다.
정리하면, 어떤 일이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면 불완전한 표현이다. 자칫 두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50년 역사에서 어떤 일이 처음 생긴 것일 수 있다. 즉 일이 진행된 지 50년 동안 첫 사례임을 뜻한다. 또 하나는 그전부터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고 5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어떤 일이 발생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언어표현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향해야 한다. 의미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줘야 ‘소통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