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택시 믿었는데"…3년 동안 물타기 했더니 벌어진 일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4-10-19 07:00
수정 2024-10-19 17:17


“지난 3년간 해외여행도 백화점도 안 가고 모은 돈으로 테슬라에 투자했는데 여전히 손실 중입니다. 오늘 밤 하락은 너무 괴롭네요. 다 던지고 싶습니다.”

화려한 이벤트의 끝은 심란한 밤이었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테슬라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로보택시를 공개한 다음 날 주가는 전일 대비 8.78% 급락했습니다.

테슬라 및 미국 투자 커뮤니티엔 한탄의 글이 쏟아졌습니다. 이중엔 지난 3~4년간 장기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올해 들어 11% 하락했습니다. 4년 전 주가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23%, 나스닥지수가 24% 상승하는 등 미국 증시가 활황임을 감안하면 뼈아픈 성적입니다.




과거에도 배터리 데이, AI 데이 등 테슬라의 기술 행사 직후 주가 흐름은 좋지 않았습니다. 발표 기대감에 올랐다가 급락하는 식이었지요. 이를 알면서도 이번 ‘We, Robot’ 행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올해 들어 테슬라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기 때문이지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행사 이후 월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테슬라 목표주가 310달러를 내걸어온 강세론자 아담 조나스 모건스탠리 연구원조차 “이게 다인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는 이날 행사를 ‘C-’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테슬라의 로보택시 공개가 자세한 정보 없이 의뭉스러운 계획으로만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모았던 저가형 차량(가칭 모델2)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로보택시 2027년 상용화 전망이날 테슬라는 2인승에 2개의 버터플라이 도어가 달린 ‘사이버캡’을 선보였습니다. 운전대가 없는 완전자율주행 차량입니다. 머스크가 직접 사이버캡을 타고 등장했고 초청된 관객들도 시승 체험을 했습니다. 20인승의 자율주행차량 ‘로보밴’도 깜짝 공개됐습니다. 아쇼크 엘루스와미 AI 소프트웨어 부사장은 지난 16일 X(옛 트위터)에 “사이버캡 16대와 모델Y 29대가 스스로 운전해 2000명 이상의 승객을 1300회 운송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시장에선 테슬라가 로보택시 실물 공개를 넘어 구체적 서비스 스케줄을 밝힐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머스크는 “2027년 이전까지 로보택시를 3만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생산하겠다”고만 언급했을 뿐 서비스 일정에 대해선 함구했습니다. 이어 “내년부터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 비감독형 FSD(Full-Self Driving)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FSD는 운전자의 감독이 필요한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입니다. 현재 북미 시장에서 약 40만명이 이용 중입니다. 이것을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레벨4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얘기입니다. 머스크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비감독형 FSD가 내년부터 기존 테슬라 차량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고, 2027년 로보택시 서비스가 상용화될 수 있겠지요.

다만 지난 수년간 완전자율주행을 달성하겠다는 머스크의 발언을 생각하면 이 계획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일론 타임’입니다. 과거 머스크는 로보택시 서비스 시기는 FSD의 발전에 달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개리 블랙 퓨처펀드 공동창업자는 “머스크가 감독형 FSD를 어떻게 비감독형으로 전환할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정적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We, Robot’ 행사에 참석한 에디슨 유 도이체방크 연구원은 지난 11일 “세부 정보가 부족했고 사이버캡의 시험 주행 코스가 짧았다”면서도 “테슬라가 자율주행과 인간형 로봇 분야에서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테슬라 목표주가는 295달러입니다.


규제 문제는 없나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는 미국 피닉스, 샌프란시스코, LA 등에서 로보택시를 운영하고 있지요. 201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벌서 6년간 자율주행 노하우를 습득한 셈입니다. 월가에선 테슬라가 로보택시 행사에서 웨이모처럼 서비스를 시작할 도시와 규제당국의 면허 신청 현황 등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에 대해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완전자율주행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1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는 운전대나 제어장치가 없는 차를 도로에 내놓기 전에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웨이모 등 현재 미국의 로보택시 운행 차량들은 운전대가 달려있습니다.)

자동차 업체가 이 허가를 면제받는다면 시범적으로 연간 2500대만 배치할 수 있습니다. 로보택시를 양산해 판매까지 한다는 테슬라의 계획을 고려할 때 너무 적은 양이지요. 그나마도 NHTSA는 지난 15일 테슬라가 사이버캡의 허가 면제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테슬라는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로 자율주행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주 허가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2년 제너럴모터스(GM)의 로보택시 자회사 크루즈는 운전대가 없는 무인 셔틀을 출시하기 위해 NHTSA에 허가 면제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NHTSA는 2년 이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GM은 결국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테슬라가 보수적인 NHTSA의 규제 장벽을 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NHTSA는 18일 테슬라 차량 240만대를 대상으로 FSD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가시성이 낮은 상황에서 FSD와 관련된 4건의 충돌사고가 있었고 이중 1건은 치명적 사고였다는 게 조사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머스크가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정치적 방법을 동원해 자율주행 규제를 돌파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2편 ‘저가형 모델은 어디에’서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모빌리티 & AI 혁명’을 이끄는 혁신기업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