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정작 알코올 질환을 치료할 전문병원과 병상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알코올 의존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적절한 진단과 조기 치료를 받지 못하고, 환자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반 정신과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병원 8곳에 병상은 1700개뿐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알코올 질환 전문병원은 경기도 4곳, 충청북도 2곳, 부산·광주시에 각각 1곳 등 전국 8곳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전문의 3명, 전문 병상 80개 이상, 알코올 환자 비중 3분의 2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정신과병원을 알코올치료 전문병원으로 인증해주고 있다. 해당 병원엔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전문병원관리료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복지부의 2021년 국민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남용과 의존증을 포함한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1년 유병률은 2.6% 수준이다. ‘알코올 문제’를 겪는 사람이 134만 명에 이른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국 전문 병원은 8곳뿐인 데다 병원이 보유한 병상은 총 1712개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알코올 의존증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환자 수는 6만2818명으로 전체 유병자의 4.6%에 불과하다.
전국 전문병원에는 알코올 질환 의심자가 수주씩 대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동생의 알코올 의존증 입원 치료를 준비 중인 박모씨(52)는 “집과 가까운 알코올 전문병원인 일산 카프성모병원에 문의했는데 초진에만 3주가량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알코올 의존증은 재발률이 높은 만성질환인 데다 가정 폭력부터 강력 범죄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질환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 검거된 살인범 중 37.5%, 방화범의 39%가 ‘주취 상태’ 범행이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이 격해지는 문제가 있다”며 “주요 선진국은 알코올 중독이 마약 등 더 강한 의존성 약물 범죄로 이어진다고 보고 환자를 조기에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알코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환자들이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정신과에선 치료 효과 떨어져국내 알코올 의존증 치료의 상당 부분은 일반 정신과병원에서 이뤄진다. 애초에 ‘알코올 환자 입원’은 받지 않고 거부하는 사례가 많으며 설령 치료받더라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병원만큼의 상담사와 간호인력, 알코올 재활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해서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멀쩡한 사례도 많아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 입원시키면 조기 퇴원을 요구할 때가 많다”고 했다.
전문병원 확대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의료계에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가제도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존증 환자 70~80%는 정부가 진료비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의료급여 대상자’인 경우가 많은데, 전문병원관리료 인센티브는 일반 건강보험 환자 기준으로 지급하고 있다. 전 원장은 “알코올 전문병원을 유지하려면 상시 인력을 운용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돼 일반병원이 전문병원 신청을 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