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日 '빅3 카드사'에 AI 플랫폼 수출

입력 2024-10-17 17:46
수정 2024-10-18 01:16

현대카드가 독자 개발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일본 대형 신용카드사에 판매하기로 했다. 계약 규모는 수백억원으로 알려졌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사진)이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를 선언한 지 약 9년 만에 거둔 성과다. 그동안 카드사에서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변신을 꾀한 현대카드가 전 세계로 확장하는 데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상 최대 소프트웨어 수출 현대카드는 일본 3대 신용카드사 스미토모미쓰이카드(SMCC)에 AI 플랫폼 ‘유니버스’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발표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AI 소프트웨어를 수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양사 간 비밀 유지 협약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백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소프트웨어 계약으로는 전 산업군을 통틀어 사상 최대 수출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그간 소프트웨어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며 “그런 점에서 현대카드가 일본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수출한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니버스는 현대카드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초개인화 AI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AI 엔진으로 분석하고 가공한 데이터를 초개인화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SMCC는 유니버스를 도입해 회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신 업무, 고객 상담, 부정 사용 감지 등 전 영역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복수 기업 추가 도입 검토”이번 수출은 선진국의 대형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일본은 기술 도입 과정에서 깐깐한 검증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SMCC는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현대카드와 기술 실증을 하는 등 철저한 검증 끝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소형 금융사가 아니라 자산 40조원을 보유한 SMCC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까다로운 일본 시장의 검증을 통과한 덕에 수출 확대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SMCC가 속한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 산하 다른 계열사와 해외 유수의 금융사들이 유니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번 수출은 시작일 뿐 여러 나라 기업들이 문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AI에 주목한 정 부회장의 선구안이 적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를 선언하고 AI와 디지털 사이언스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현대카드가 생존하기 위해선 카드사라는 범주에만 머물지 않고 IT 기업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5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AI에만 1조원을 투입했다”며 “AI혁명은 산업혁명보다 더 세게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데이터로 승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데이터 양이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가 금융사의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봤다. 현대카드가 유니버스와 같은 AI 플랫폼을 구축해 수출하는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그는 “데이터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이를 어떻게 인프라화할지 연구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