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재·보궐선거에서 '보수 텃밭'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선거 후 첫 육성으로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했다. 유의미한 성적표를 손에 들고 윤석열 대통령의 '역린'을 노골적으로 건드리고 나선 것이다. 당정 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강하게 쥐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여사 관련 일들로 모든 정치 이슈가 덮이는 게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야당의 무리한 정치 공세도 있지만,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들도 있었고, 의혹의 단초를 제공하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먼저 "김 여사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이 반드시,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한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 내외를 돕거나 수행했던 인사 중 7명 안팎이 현재 대통령실 비서관·행정관으로 기용돼, 김 여사의 곁에서 직무 범위를 벗어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최근 소위 '김 여사 라인', '한남동 라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의 라인은 오직 대통령 라인만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한 대표가 한 차례 더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이다. 한 대표는 "인적 쇄신은 꼭 어떤 잘못에 대응해서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정치 민심을 위한 정치를 위해 필요한 때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이 그럴 때"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두 번째로 "김 여사가 대선 당시 약속한 대로 대외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 한 대표는 재보선 직전인 지난 10일에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던 김 여사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며 "그 약속을 지키면 된다"고 공개 활동 자제를 촉구했었다. 한 대표가 김 여사의 공개 활동에 대한 입장을 피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대표는 김 여사를 향해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해 드리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표의 이 발언에는 김 여사의 공식 입장 표명뿐만 아니라, 김 여사를 증인으로 채택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의 국정감사에까지 출석하라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일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한 대표의 발언은 이번 재보선에서 부산 금산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소위 '보수 텃밭'을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한(親한동훈)계 인사는 "한 대표가 말한 변화와 쇄신이라는 건 악재를 떨치라는 거 아닌가"라며 "한 대표의 이날 김 여사 조준은 앞으로 당정 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강하게 쥐고 나가겠다는 의도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부산 금산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윤일현 국민의힘 후보가 61.03% 득표율을 기록해 김경지 민주당 후보(38.96%)를 약 22%포인트(p) 차로 꺾고 당선됐다. 금정구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었지만, 당정 지지율 집권 후 최저치, 김 여사 이슈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접전이 예상됐던 지역이었다.
마찬가지로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는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서도 박용철 국민의힘 후보가 50.97% 득표율을 기록해 한연희 민주당 후보(42.12%)를 눌렀다. 당초 3선 국회의원과 인천시장을 지낸 안상수 후보가 국민의힘을 탈당, 무소속 출마해 여권 표 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실제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