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잠 못 들던 밤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잠자리에서 이불을 찾는 시절이 됐다. 시절 변화와 함께 금리 인하라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연 3.25%로 내렸다. 2020년 5월 이후 무려 4년5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하다. 코로나19로 풀린 돈줄을 죄기 위한 긴축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전환인 소위 ‘피벗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기에 긴 호흡으로 기대해 본다.
물론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총재가 말한 것처럼, 금리 인하가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절대 아니다. 이 총재가 국정감사에서 답변했듯이, 한 차례의 금리 인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몇 차례 어떤 속도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벌써 금통위가 연내에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배경인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인 가계부채에 대한 금통위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된다.
문제는 국내 경제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올 1분기 GDP 증가율은 전기 대비 1.3% 증가했지만 2분기에는 -0.2% 역성장했다. 당시 1분기 깜짝 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해석하며 위안했지만, 3분기에도 ‘제로(0) 성장’ 또는 높아 봐야 0%대에 그쳐 국내 경제가 사실상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암울한 진단이 나온다. 한은의 금리 인하 실기론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최적 해법’이라는 정답에 집착하다가 금리 인하의 ‘적시성’을 놓쳐 그 효과를 누리지 못할까 봐 우려된다.
피벗 시대에 금리 인하의 효과는 적시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러 구조적 요인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통위가 우려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가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정부의 거시건전성 대책과 효과가 중요한 관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세계국채지수 편입과 금리 인하 등이 민생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관련 정책을 정교하게 추진하라”는 당부가 한은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소위 ‘F4’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 정책에도 실제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거시경제 변동을 예측하는 중요 키워드는 금리와 수출이다. 수출의 낙수효과는 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 진작의 부스터 역할을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견고한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퍼지지 않고 있다. ‘낙수효과’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수출이 내수를 유발하려면 중간재 등 국내 생산과 투자가 증가해야 하는데 이 연결 고리가 약해졌다. 정부는 연결 고리를 약화하는 규제를 철저히 식별해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특히, 협력사의 탄소 배출량 공시를 강제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등 수출과 내수의 연결 고리를 약화할 수 있는 규제 도입은 금리 인하의 내수 효과가 안착할 때까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나아가 수출의 낙수효과를 끌어내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적극적인 행정도 필요하다. 가령,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연구개발비나 인건비를 지원하는 수출기업에 이런 연결 고리를 하나의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모처럼 맞은 피벗 시대에 한은은 금리 인하의 적시성을 놓치지 말고, 정부는 이런 금리 인하의 부스터로서 수출기업의 사회적 자산에 대한 낙수효과 정책을 마련해 추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