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를 나와 국내 유명 자동차회사 미국 지사 공장에서 자동차 품질 관리를 해왔다. 일은 고되지 않았고, 생활도 여유 있었지만 가슴이 뛰는 재밌는 일을 찾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재밌는 일'을 검색해 쇼호스트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고, 남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발표할 때면 손까지 떨었던 공대 출신 엔지니어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1년 만에 쇼호스트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500만 조회수'를 기록한 화제의 숏폼 '사랑받는 사람들의 예쁘게 말하는 법'의 주인공이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오늘의 말씨'를 쓴 신현종 씨의 이야기다.
신씨의 첫 근무지는 미국이었다. 대학 졸업 후 기아자동차 협력 업체 직원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부품 중 불량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불량품이 나오면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게 그의 업무였다. "몸은 편하고, 금전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신씨는 미국에 계속 남을 것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을 때 후자를 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을 쓰는 일을 좋아했어요. 아르바이트도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이삿짐센터, 중국집 설거지 이런 걸 했어요. 흔한 카페 아르바이트는 오히려 안 해본 거 같아요.(웃음) 몸이 편한 일이 스스로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재밌는 일'을 검색했을 때 쇼호스트가 나오는 걸 보며 상품을 공부하고, 경쟁하고 이런 부분들이 저랑 잘 맞을 거 같더라고요. 엄마랑 통화하면서 '쇼호스트 해볼까' 했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진로를 바꿨죠."
즉흥적으로 바꾼 진로였지만, 준비 과정 내내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이전까지 카메라 앞은 물론 남들 앞에 서는 경험도 많지 않은 '공돌이' 출신이었던 신씨는 "아무것도 몰라 아카데미 등록부터 했는데, 이전엔 발표 프레젠테이션도 안 해봐서 말을 안 할 때에도 손을 덜덜 떨었다"며 "위축되고, 떠는 제 모습을 고치고 싶어 지하철에서 자기소개도 하고, 강남 한복판에서 춤도 췄다. 불안에 떠는 제가 싫어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 만에 초스피드로 합격한 비법도 '치열함'을 꼽았다. 신씨는 "그때 집이 경기 시흥이고, 아카데미는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는데 왕복으로 4시간 정도 걸렸다"며 "수업이 없어도 매일 학원에 갔는데, 그 이동 시간이 아까워 지하철 칸 칸마다 있는 연결 공간에서 혼자 발성, 발은 연습하고,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면서 계속 '웅얼웅얼' 했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쇼호스트가 되고 나서도 빨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남자 쇼호스트 중 1등이 된 거냐"고 묻자, 신씨는 "그렇다"며 "쇼호스트들은 섭외를 당하는 입장이라 퍼포먼스를 잘 보여줘야 한다. 그런 쪽으로 선호도가 높아야 한다"며 치열한 경쟁 세계를 전했다. 그러면서 "덕분에 좋은 조건의 이직 제안도 빨리 받았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에서 쇼핑엔티로 홈쇼핑 채널을 바꾼 후 신씨는 라이브 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하면서 "더욱 저의 스케줄에 맞춰 시간을 활용하고, 더 다채로운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피치 인플루언서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생방송 일정이 잡히면 평일이든, 휴일이든, 낮이든, 밤이든 구분 없이 바로 가서 해야 해요. 그런데 녹화는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서 나머지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됐죠. 그때부터 스피치 강연을 시작했어요. 저는 많은 사람이 저를 주목해주고, 제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더라고요. 전형적인 관종입니다.(웃음) 그래서 카메라 앞에 서는 일,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일, 모두 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현재 신씨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우 수는 10만명,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9만명에 달한다. "쇼호스트가 본업이라 세일즈 강의 콘텐츠로 키우려 계정을 만들었다"는 그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숏폼 영상 '예쁘게 말하는 법'이 5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관심을 끌면서 단숨에 스피치 인플루언서로 등극했다.
"영상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게, '예쁘게 말하는 법' 영상도 그냥 번개로 라이브 방송을 켰을 때 어떤 분이 질문을 주셔서 한 말이었어요. 쇼호스트 일을 하다 보니 말을 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소리를 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면접 외에는 그렇게 말할 일이 없으니까요.(웃음) 그래서 그렇게 답하고, 편집해서 올렸는데, 저도 그렇게 관심을 받을지 몰랐어요."
영상이 관심을 끌면서 책 '오늘의 말씨(북스고)'까지 집필하게 됐다. 지난달 27일 발행된 책은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관심을 모았다. 신씨는 "출판 제안을 받고,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예쁜 책'을 쓰고 싶었다"며 "디자인뿐 아니라 술술 읽히지만, 그 내용은 마음에 남길 바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음과 미움, 글자를 보면 점 하나를 어디에 찍냐의 차이더라고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도 하지만 미움을 사기도 해요.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외적으로 스타일링을 하는 것처럼, 저도 '언어 스타일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중에 나온 책들은 기술적인 스피치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말을 잘한다'보다는 '마음을 잘 전달한다'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 그가 책에서 가장 강조한 건 '긍정의 내면화'였다. 신씨는 "저 역시 처음에는 유사과학처럼 느껴져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나는 할 수 있다', '행복하다', '설레는 하루를 보낸다'고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에도 제가 잘했던 걸 되새기고 스스로 보상하면서 자신도 많이 바뀌었다"며 "심리 용어로 '초점 전환'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황이나 상황 인식을 조금 다르게 인식하는 거다. '떨린다'가 아니라 '설렌다', '긴장된다'가 아니라 '두근거린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는 연습을 했고, 그러면서 발표 불안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저도 욕도 많이 하고, 화도 많고, 말싸움도 많이 했어요. 짜증 나는 거요? 당연히 많았죠. 그런데 저렇게 긍정 확언을 하고, 초점 전환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바뀌더라고요. 운전할 때 누가 끼어들면 저도 욕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의미없다' 싶더라고요. 그 욕은 제 입으로 하고, 내 귀로만 들리는 거잖아요. '바쁜 일이 있었겠지', '화장실이 급했나 보네' 다른 쪽으로 초점 전환을 해 생각하게 됐죠."
유튜브에서 '재밌는 일'을 검색하면서 시작된 그의 일은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처음 쇼호스트를 할 때보다 수입은 3배 이상 늘었지만, 신씨는 "돈 때문에 이 일들을 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내면이 단단한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고민은 엿보이지 않았다.
매년 신년 목표를 세워 휴대전화 배경 화면으로 해놓는다는 신씨는 "올해는 이미 다 이뤘다"며 벌써 신년을 계획하는 모습이었다. 스피치 영역은 세일즈까지, 활동 플랫폼은 틱톡까지 확대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전한 신씨는 추후 "자신감 훈련소라는 걸 개소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학생부터 직장까지 남들 앞에 설 때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
"돈이 많으면 당연히 좋죠. 그런데 돈은 제가 목표한 걸 열심히 이루면 따라오니 그게 우선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동기부여와 뿌듯함, 성취감, 저로 인해 누군가 변화했다는 만족감, 이런 것들이 저에겐 더 중요해요. 안주하는 삶이 싫어요. 계속 성장해가는 게 재밌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