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기능 정지 위기를 가까스로 면했지만 미봉일 뿐이다. 헌재는 그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제기한 ‘9명 재판관 중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조항(헌법재판소법 제23조 1항)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관 3명이 내일 임기가 끝나는데 국회가 후임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아 맞는 6인 체제로도 심리와 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 국회의 탄핵 의결로 헌재 심리가 진행 중인 이 위원장은 이번 결정이 아니었다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헌재가 최악의 사태를 피한 건 다행이나 6인 체제는 최소한의 비상조치에 불과하다. 권한쟁의 등 일반적인 사안의 헌재 결정 요건은 재판관 과반 찬성이다. 6명일 땐 4명 이상 찬성을 요한다. 다만 법률 위헌, 탄핵, 정당 해산, 헌법소원 등 인용 결정과 헌재가 판시한 헌법 또는 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 변경은 더 엄격해 9인 체제든, 6인 체제든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6인 체제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결정할 수 없다.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라면 더 결정이 어려워 재판관 충원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비정상이 벌어진 데는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공석이 될 재판관 3명 후임은 국회 선출 몫이다. 여야가 한 명씩, 나머지 한 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두 명을 추천하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마냥 표류하고 있다. 탄핵을 의결한 이 위원장과 탄핵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검사들의 직무 정지를 연장하려는 정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게 음모가 아니라면 국민의 기본권 보호 역할을 맡고 있는 헌재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헌재엔 전원부 심리 사건이 1000건 넘게 쌓여 있고, 심리 기간 2년을 넘긴 것도 370여 건에 이른다. 9인 체제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6인 체제 장기화 땐 심리와 결정이 더 늦어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합의가 어렵다면 일단 여야 한 명씩, 두 명이라도 먼저 추천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