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감자칩, 치킨 너겟 등 제조 과정에 여러 공정을 거치는 대량 생산 식품을 '초가공 식품'이라고 한다. 최근 일각에선 비건 식품 중 상당수가 이런 '초가공 식품' 범주 안에 속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콩 단백질 등으로 가짜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 원재료를 가공하는 작업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비건식을 둘러싼 '초가공 식품' 논란을 소개했다. 비스킷, 감자칩 등 과자나 아이스크림, 소스류, 냉동 식품 등은 원재료에 복잡한 공정을 거쳐 만드는 초가공 식품이다. 초가공 식품의 구체적인 정의에 대해선 영양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이런 식품은 대체로 맛을 내기 위해 당·염분·지방을 대량으로 투입하며 칼로리도 높다.
문제는 초가공 식품이 비건식의 영역으로 확대됐다는 데 있다. 최근 비건식 중에는 대두 단백질로 만든 가짜 소시지나 패티 등 '대체 육류' 상품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제품은 식물성 단백질을 고기와 비슷한 식감으로 바꾸기 위해 복잡한 가공을 한다.
BBC는 "채식주의자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 고기가 해로운 초가공 식품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식물에서 유래한 초가공 식품을 즐겨 먹는 사람은 일반 식단을 섭취하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12%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초가공 비건식'은 실제로 건강에 위험할까. 대두 소시지, 식물 패티 같은 제품의 위해성은 영양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초가공 식품'도 종류에 따라 건강에 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BBC는 "일례로 시리얼, 빵에는 몸에 필요한 성분인 섬유질이 있다"며 "하지만 다른 초가공 식품은 섬유질을 비롯한 여러 영양소가 심각하게 결여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초가공 식품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건강에 좋은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원재료 자체'인 붉은 육류를 지나치게 섭취하면 심혈관 질환에 나쁜 영향을 준다. 다만 초가공 식품은 가공 과정에서 설탕과 소금이 많이 함유되는 건 사실이며, 이 때문에 적은 양으로도 많은 칼로리를 낸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맛이 좋아 무심코 과식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더 높은 칼로리 섭취는 체중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초가공 식품을 소비자 스스로 조절해서 먹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영양 회사 'ZOE'의 수석 과학자인 사라 베리 킹스칼리지 런던 영양학과 교수는 BBC에 "동물성이든, 비건식이든 모든 초가공 식품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다"며 "패티나 통조림을 먹더라도 신선한 과일과 채소, 견과류, 콩 등을 곁들여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면 충분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