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기자와 박형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직접 방문한 스타베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스타십이었다. 스타십의 첫인상은 웅장함 그 자체다. 대형 크레인에 탑승한 웰딩 엔지니어들은 스타십 외벽에 검은색 육각형 단열 타일 부착 작업에 한창이었다.스타십부터 메카질라까지…상식 뛰넘는 일론 머스크의 도전단열 타일은 스타십의 지구 재진입시 동체 보호를 위해 엄청난 열의 플라즈마를 견디는 역할을 한다. 플라즈마는 대기권에 재진입 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강력한 공기 마찰에 의해 7000도의 불꽃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스타십의 초정밀 접합 공정 담당하는 조 카브레라 스페이스X 웰딩 엔지니어는 "접합을 잘못하면 재진입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인류의 새 역사를 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십은 머스크 CEO가 인류를 화성에 보내기 위해 개발한 초대형 우주선이다. 2단부로 구성된 스타십은 '슈퍼헤비'라는 이름을 가진 1단부 위에 '스타십'으로 불리는 2단부를 얹은 모양새다. 스타십은 길이 121m 무게 5000t으로, 인류가 만든 로켓 중 가장 크다. 40층짜리 아파트와 맞먹는다.
그동안 인류가 만든 가장 큰 로켓은 1960~1970년대 아폴로 계획 때 쓰인 길이 110m짜리 '새턴 5호'다. 스타십 내부는 150t까지 적재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5명 내외의 우주인만 탑승할 수 있는 기존 로켓과 달리 한 번에 100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스페이스X의 주력 재사용 발사체인 '팰컨9'으로 60개씩 배치 중인 스타링크 위성도 스타십으로는 400개씩 적재할 수 있다. 지구 중력을 뿌리치고 날아오르는 추력은 7590t에 달한다.
스타십은 발사를 거듭할수록 향상된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1차 시험 발사에서 2단 로켓이 분리되지 않은 채 발사 4분 만에 공중 폭발했으나 같은 해 11월 2차 발사에선 2단 로켓 분리와 33개 엔진을 전부 점화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어 지난 3월 3차 시험비행에서 스타십은 48분간 비행하며 궤도 도달에 성공했다. 우주 비행 후 첫 재진입, 화물 운송에 필요한 페이로드(적재함) 문 개폐, 추진제(액체 메탄과 액체 산소)의 우주선 내 이송 등 새로운 기술 시연에 성공했다.
문제는 해상 착수였다. 2단 스타십 분리 후 슈퍼헤비가 하강하는 과정에서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스타십도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자세 제어에 실패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4차 시험 비행에선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착수해 이같은 기술적 결함을 대부분 해소했다.
지난 13일 5차 시험 비행에선 스페이스X의 전용 발사 및 회수대 메카질라 테스트가 핵심이었다. 스페이스X는 자사 엔지니어들이 이런 방식의 슈퍼헤비 포착 시도를 위해 수년간 준비하고 몇 개월간 시험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메카질라를 이용한 슈퍼헤비 회수는 이날 처음으로 시도됐다. 이날 스타십의 1단 슈퍼헤비는 발사 후 상단 우주선과 순조롭게 분리됐고, 발사 약 7분 만에 발사 지점인 메카질라로 정확하게 돌아왔다.
슈퍼헤비 로켓은 지상에 가까워지면서 엔진을 재점화해 역추진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급격히 줄인 뒤 서서히 수직으로 하강하다 방향을 살짝 조정해 발사탑에 설치된 젓가락 모양의 두 로봇팔(찹스틱) 사이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를 지켜본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과 스타베이스 인근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스타십 시험비행의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한 케이트 타이스 스페이스X 엔지니어는 "오늘은 역사책에 기록될 날"이라며 감격했다. 제시 앤더슨 엔지니어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젓가락이 (로켓) 부스터를 잡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엑스(X·옛 트위터)의 한 사용자가 해당 영상을 자신의 계정에 게시하며 "실화인가? 공상과학처럼 느껴진다"고 쓰자, 머스크 CEO는 "허구 부분이 없는 공상과학"이라고 답했다.
스페이스X는 이날 신기술을 이용해 슈퍼헤비 로켓을 100% 완벽하게 회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동안 꿈꿔온 스타십 재사용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스페이스X는 2016년 슈퍼헤비보다 작은 로켓 팰컨9를 자체 역추진 방식으로 해상 무인선 위에 온전히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뒤 여러 차례 재사용해 왔다. 하지만 랩터 엔진 33개로 추동되는 역대 최강·최대 규모의 슈퍼헤비 로켓을 회수해 재사용한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도전 과제였다.
스페이스X는 강력한 로켓을 여러 차례 재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주 사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다. 메카질라에 착륙한 로켓은 기존 한 달 넘게 걸리던 재발사 준비 기간을 단 1시간으로 줄이고, 이를 통해 스타십 발사도 하루 3회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공중 포획 방식으로 착륙하기 때문에 지상 착륙을 위한 별도의 다리가 필요 없어 무게와 연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날 시험비행에서는 2단 우주선인 스타십도 예정대로 비행을 마치고 별 파손 없이 인도양 해역의 목표 지점에 성공적으로 입수했다.
빌 넬슨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이날 엑스에 "오늘 부스터 포착과 다섯 번째 스타십 비행 테스트에 성공한 스페이스X를 축하한다"며 "우리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하에 지속적인 테스트를 하면서 달의 남극 지역과 화성 탐사 등 우리 앞에 놓인 대담한 임무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최대한 단순하게, 최대한 강력하게…스타십 밀어올리는 궁극의 랩터 엔진머스크 CEO는 복잡한 걸 극도로 꺼린다. 이같은 성향은 스타십 엔진 구성에서도 엿보인다. 박 교수는 "스타십에는 총 33개의 랩터 엔진이 장착된다"며 "2016년 첫 연소 시험을 마친 랩터 엔진의 초기 버전 '랩터1'은 엔진 외부에 파이프와 밸브, 기계 장치가 복잡하게 얽혀있었지만 2021년 성능을 개선한 랩터2는 이런 부품들이 대거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스페이스X는 지난 8월 한 번에 통째로 찍어낸 것처럼 모양이 획기적으로 단순해진 랩터3를 공개했다. 박 교수는 "스페이스X는 3세대에 걸쳐 여러 부품을 하나로 통합하고, 외곽으로 돌출된 부품을 내부에 통합하는 디자인을 연구했다"며 "모든 부품의 품질을 균일화하기 위해 3D 프린터도 도입했다"고 했다. 중량은 2t에서 1.5t으로 줄었고, 제조 단가도 절반가량 낮췄다. 낮아진 중량만큼 추력비가 향상됐다. 스타십을 랩터3에 맞춰 재설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향후 스타베이스는 랩터3 생산과 연구개발(R&D) 전초기지 역할을 할 예정이다. 머스크 CEO는 스타십을 타고 화성까지 가려면 편도 26개월이 걸린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과학계에선 랩터 엔진 성능에 따라 이동 시간을 1개월이라도 단축시킨다면 그에 따른 효율성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머스크 CEO는 평소에도 랩터 엔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지난 4월 스타베이스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펼친 연설에서 "스타십 랩터 엔진들이 뿜어내는 불꽃 화염이 얼마나 길게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다"며 "매우 긴 화염 꼬리는 연소실 압력이 매우 높아서 더 빠른 속도로 배기 가스를 방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꽃의 길이가 무려 300m 쯤 될 것"이라며 "스타십 전체 길이의 두배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엔진은 로켓 개발의 꽃으로 불린다. 개발 비용도 많이 들고, 실패 확률도 높은 데다 원천 기술 없이는 진입 자체가 어렵다. 지난 3년 간 스페이스X 랩터엔진개발팀의 선임 터보기계연구원으로 스타십 개발에 참여한 이진욱 박사는 "스페이스X는 난관 속에서도 과감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며 "최고의 인재들이 최선의 공학적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밤낮으로 R&D에 매진하고, 지도부는 그 판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선순환이 인류 최대의 우주항공기업을 일궈낸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스페이스X의 성공 요인이 막대한 자본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며 "스페이스X는 지구상의 어떤 조직보다 가장 효율적인 집단으로, 경이로운 수준의 비용 만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고 했다.
보카치카=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