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남서쪽에 있는 라인란트팔츠주의 공업 도시 루트비히스하펜. ‘독일 산업의 젖줄’ 라인강이 흐르는 이곳에서 글로벌 최대 화학사 바스프(BASF)는 세상을 바꿀 ‘제2의 플라스틱’을 개발 중이다. 제조 단계부터 수명을 설정해 기한이 다하면 스스로 사라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생명 주기를 가진 친환경 플라스틱
지난달 바스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퍼포먼스 소재 사업부 실험실을 한국 언론 최초로 방문했다. 연구원들은 라만분광현미경으로 플라스틱 필름이 생분해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스프는 합성 섬유에 주로 쓰이는 폴리에스테르에 생분해성이 있는 성분을 첨가한 바이오폴리머 ‘이코플렉스’와 ‘이코비오’를 개발했다.
바이오폴리머 사업을 이끄는 안드레아스 쿤켈 부사장은 “플라스틱 분자에 미생물을 마치 시한폭탄처럼 심는 기술이 핵심”이라며 “박테리아, 곰팡이, 조류 등 잠들어 있던 미생물 포자가 재료를 음식과 에너지원으로 소비하면서 생분해가 이뤄지는데 플라스틱 분자 구조를 공격해 잘게 분해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바스프는 최대 60여 가지의 토양뿐만 아니라 풍화, 파도, 모래 등 까다로운 조건이 많은 퇴비 환경에서도 플라스틱이 모두 생분해되는 것을 증명했다. 쿤켈 부사장은 “식물 재배에 바스프가 개발한 소재를 사용했더니 수확량이 늘고 수확 속도가 빨라졌다”며 “식량 문제와 지속가능한 농경 환경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자구조 분석엔 초대형 인공지능(AI)이 사용됐다. 3페타플롭(1페타플롭은 초당 1000조 번의 수학 연산처리)의 컴퓨터 성능을 갖춘 바스프의 슈퍼컴퓨터 ‘큐리오시티’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성능 컴퓨터 프로덕트 매니저인 슈테판 솅크 박사는 “200개 공장에서 나오는 수억 개의 데이터로 수천 가지 가능성을 뽑아내고 그중 가장 유망한 폴리머 구조를 계산한다”고 했다.가볍고 100% 재활용도 되는 전기차고분자 신소재로 제작한 100% 재활용 가능한 전기차도 바스프의 또 다른 한방이다. 자동차 강국인 독일은 내연기관에 집착하며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졌지만 재활용 전기차로 역전을 노리고 있다. 바스프의 미래 기지로 불리는 크리에이션센터에 전시된 전기차 콘셉트카 ‘올리(Oli)’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완성차 업체 시트로엥과 협업해 만들었다. 새빨간 컬러의 올리는 독일의 절치부심을 상징하는 듯 당당해 보였다.
무게는 약 1t이다. 테슬라 모델3가 1850㎏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전기차의 절반 수준이다. 차체 지붕과 보닛은 중공 구조 플라스틱으로 제작했다. 말 그대로 내부에 빈 공간이 있는 고분자 신소재다. 차체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데다 통기성도 뛰어나 자동차와 항공기에 적용하면 연료 효율을 높여준다. 바닥재는 바스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재인 ‘인피너지’를 사용했다. 외부로부터 힘이 주어지면 내부 분자들이 팝콘처럼 부풀어 여러 개의 거품 구조를 형성하는 신소재다. 3㎜ 굵기의 가는 플라스틱 실을 촘촘히 엮어 만든 메시 구조의 운전석 의자는 여성이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올리는 전체의 80%가량이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이뤄졌다. 귀스카드 글럭 바스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부 부사장은 “전기차에 적용되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조만간 10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바스프의 노림수는 유럽연합(EU)의 자동차산업 규제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EU의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배터리 재활용뿐만 아니라 자동차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25%를 재활용 소재로 의무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루트비히스하펜=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