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는 높은 수입물가 못 잡아…엔고가 日경제에 더 긍정적"

입력 2024-10-14 18:13
수정 2024-10-22 16:21

천정부지로 치솟던 엔·달러 환율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달러당 140엔 수준에서 출발한 엔·달러 환율은 줄곧 상승(엔화 가치 하락)해 지난 7월 초 달러당 160엔마저 넘어섰다. 34년 만의 최고치다. ‘슈퍼엔저’에 일본은 수입 물가 상승 등으로 비명을 질렀다. 7월 말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에 따라 두 나라 금리 차이가 줄면서 엔·달러 환율은 최근 140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1997~1999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환율 방어에 나선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관(83)에게 내년 엔·달러 환율 전망 등을 들었다.

▷올해 엔·달러 환율이 요동쳤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에 따라 크게 움직였습니다. 일본과 미국 경제의 상대적 포지션, 금리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달러당 160엔은 과도하지 않나요.

“일본 경제를 장기적으로 비관하는 ‘일본 매도’가 아닙니다. 투기적 엔 매도세 때문이죠. 당국은 지금도 헤지펀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일본은 올해 엔 매수에 개입했습니다.

“개입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엔화 상승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97~1999년 때와는 뭐가 다른가요.

“제가 재무관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시장 규모가 훨씬 더 큽니다. 효과를 보려면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입해야 하죠. 시장의 의표를 찌르는 타이밍에 개입하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어졌습니다. 올해는 시장 참가자가 예상하기 어려운 타이밍을 선택한 점이 주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점이었습니까.

“시장에 개입한 4월 29일은 일본 공휴일인 ‘쇼와의 날’이었죠. 5월 1일은 미국 Fed의 기준금리 동결 직후였습니다. 휴일, 새벽 등 거래량이 적은 시간대에 개입하면 효과가 나기 쉽습니다.”

▷계속 엔화를 사들이기는 힘들 텐데요.

“쏠 수 있는 총알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엔화 매수 개입은 외환보유액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제가 재무관 시절 개입했을 때 외환보유액의 10%를 써버려 ‘아차’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현금화할 수 있는 미국 국채 등 제약도 있죠.”

▷개입 때 미국 동의도 필요한가요.

“반드시 미국에 연락합니다. 개입할 때는 항상 양해를 구하죠. 적어도 미국이 크게 반대하면 할 수 없으니까요.”

▷미국이 반대한 적도 있습니까.

“제가 아는 한 미국의 반대로 중단한 적은 없습니다. 일본도 상대방이 곤란해할 만한 타이밍에는 안합니다.”

▷시장 개입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공식적으로는 재무상 관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재무관이 위임받아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일본은행과 연락을 취하죠. 실제로 주문을 내는 것은 일본은행입니다.”

▷내년 환율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올해보다 엔고로 진행될 겁니다. 달러당 130엔 수준으로 예상합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달러당 100~150엔에서 움직이는 것이 일본 경제에 적합할 겁니다. 달러당 130엔은 그 중간으로 딱 좋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뭔가요.

“미국 경제가 앞으로 다소 약해지고, 그에 비해 일본 경제는 상대적으로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미국의 경기 둔화와 일본의 상대적 견고함에 따라 미·일 통화정책이 역행할 것이고, 이는 미·일 금리 차이 축소로 이어지죠.”

▷미국 대선이 어떤 영향을 줄까요.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약간은 다르겠지만 일본에 그렇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엔저로 수출 증가 효과가 컸습니다.

“엔화가 약세일 때 수출이 늘어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대거 해외로 진출함에 따라 과거보다 환율 영향을 덜 받게 됐습니다. 오히려 수입에는 엔고가 좋습니다. 엔저는 수입 물가가 높아집니다.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엔고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입니다.”

▷일본 경제는 약해졌단 평가를 받습니다.

“약해지고 있다기보다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예전 같은 고성장은 이루지 못하지만, 저는 일본 경제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아요. 노동력이 부족하다면 외국인을 계속 들여오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도 어느 정도 강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추가 금리 인상은 언제쯤일까요.

“올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금리를 한 번 더 올린 것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다만 금융완화는 더 계속돼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당장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가 많이 개선됐습니다.

“한·일 관계는 현재 좋은 편입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인도 경제는 어떻게 보나요.

“인도는 앞으로 상당히 높은 성장을 이어갈 나라입니다. 1억 명이 넘는 중산층, 20대 젊은 노동력, 경제개혁 정책, 우수한 정보기술(IT) 인재 등에 계속 주목해야 합니다.”

■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1941년 출생
△도쿄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대장성(현 재무성) 입성
△1995~1997년 국제금융국장
△1997~1999년 재무관
△2006년 와세다대 객원교수
△2010년 아오야마가쿠인대 초빙교수
△현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