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 시 관할 경찰관이 아파트 공용 현관문을 드나들 수 있게 허용하는 경찰청의 폴패스 보급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2 출동 시 ‘골든타임’을 확보하려면 빨리 현관을 통과해야 하지만 일부 아파트 주민이 ‘경찰이 단지를 오가면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어서다. 생활에 필수적인 치안행정에 대한 혐오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입 5개월 전국 보급률 46.5%
14일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폴패스 도입률’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광역지자체 중 폴패스 도입률이 가장 낮은 지자체는 세종시(0%)이고, 서울시(24.4%)가 그 뒤를 이었다.
폴패스는 지난 4월 서울 중구와 중부경찰서가 처음 도입한 이후 5월 전국 사업으로 확대됐다. 연 10만 건이 넘는 아파트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발생 시 범인을 빨리 잡으려면 경찰관이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서다. 폴패스는 각 경찰서가 관할 아파트 입주민협의회와 논의해 전자태그(RFID) 카드를 받거나 비밀번호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급되고 있다.
도입 4개월이 지난 현재 전국 폴패스 도입률은 46.5%다. 중앙현관을 둔 전국 1만1015개 아파트 단지 중 5123개가 경찰관의 ‘무사통과’를 허용했다. 강원도(92.9%)의 도입률이 가장 높고 충청북도(91.0%)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세종시와 서울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 도입률은 최소 30%를 넘었다.
경찰들은 대도시 몇몇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폴패스 도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일부 입주민이 사생활 보호 등 여러 이유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경찰관 A씨는 “폴패스 도입을 논의하러 간 아파트에서 ‘경찰이 단지에 자주 나타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항의를 받았는데, 허탈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유독 세종시 폴패스 도입률이 0%인 이유에 대해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들과 일괄 도입하려고 논의 중”이라며 “그동안 경찰관이 아파트에 출입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 서초구·동작구 등은 ‘10%’ 미만서울시는 특정 구에서 폴패스 도입률이 저조한 게 특징이다. 25개 자치구 중 용산·광진·동대문구 등 3개 구는 0%이고 서초·동작·성북·관악구도 10%를 넘지 못했다. 중구는 76.3%, 영등포구는 74.4%로 도입률이 높다. 특정 구에선 폴패스 도입이 사실상 멈춰선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설 경호 시스템이 갖춰진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폴패스 도입을 ‘전면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설명이다.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삼성동 아이파크, 반포래미안원펜타스 등 각 구를 대표하는 고급 아파트는 폴패스를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경찰이 출동할 때마다 최대한 협조하며 관리인이 문을 열어줘 폴패스가 필요 없다고 설명한다.
일선 경찰들은 고급 아파트의 경우 출동 시 보안요원이 ‘입주민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문을 바로 열어주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칠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주민이 편의를 위해 택배원이나 세탁 앱 등엔 공용현관 비밀번호를 제공하면서 경찰관 출입은 꺼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폴패스는 112 신고 접수 후 현장 출동까지 '골든타임'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라 지적하며, "경찰은 폴패스에 대한 인식개선과 대국민 홍보 등 보급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 설명했다.
안정훈/조철오/정희원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