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 "세번째 'AI 겨울'은 없다…의료 분야서 세상에 없던 큰 변화 올 것"

입력 2024-10-14 17:36
수정 2024-10-15 00:58

“컴퓨팅 파워와 양질의 데이터 덕분에 현재의 인공지능(AI)은 실용적이고 확장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칼리 피오리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재단 이사장은 지난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AI 모멘텀은 실제 결과와 상당한 투자가 주도하고 있다”며 “과거 두 차례의 ‘AI 겨울’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AI 겨울은 1950년대 AI가 등장한 이후 큰 주목을 받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투자와 기술 개발의 침체기를 맞은 두 시기를 뜻한다. 업계에서는 1974~1980년과 1987~2000년을 기술의 진보가 멈춘 ‘AI 겨울’ 기간으로 보고 있다. 과거의 AI 붐이 이론적 가능성에 그쳤다면 지금은 결과와 투자가 뒤따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피오리나 이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오는 30일 개막하는 ‘글로벌인재포럼 2024’에서 ‘AX(AI 전환)로 그리는 미래: 보존과 혁신’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AI가 의료 획기적으로 바꿀 것그는 AI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겪을 분야로 의료를 꼽았다. 피오리나 이사장은 “AI는 진단과 치료, 예측을 개선할 것”이라며 “이뿐만 아니라 교육, 금융, 인사 등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가 교육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AI는 학습 경험을 개인화하고 풍부하게 해 역사와 같은 과목을 몰입감 있게 만들 수 있다”며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 학습을 제공해 교육 전반을 변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 진보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리더들이 인식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AI 역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는 만큼 촉진과 규제가 모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피오리나 이사장은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구현해야 한다”며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은 AI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빠르게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만큼 기술 발전에 제동을 걸어주는 것은 정부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기술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하면서도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며 “민간 부문과의 협업을 통해 성장과 의도하지 않은 피해로부터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부정적으로 활용된 사례로 선거 개입을 지적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와 이미지 조작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피오리나 이사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강력한 탐지 기술과 플랫폼의 투명성, 조작된 콘텐츠를 식별하는 대중 교육을 꼽았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술 기업 간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당부했다. 규제를 넘어 사용자의 인식 변화도 요구된다. 그는 “AI 개발과 사용 방식에 대한 윤리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워크와 책임감 있는 AI 사용 문화를 결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AI 시대 리더의 소양은 겸손과 협력AI 시대에 필요한 교육과 인재상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피오리나 이사장은 “AI 시대의 인재는 기술적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모두 갖춰야 한다”며 “적응하고 협력하며 가정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AI를 아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윤리적이며 의문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학교와 기업도 흐름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AI가 가져올 복잡한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기술적 전문성과 함께 적응력,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는 “AI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선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의도적으로 다양한 인재를 찾고,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질문하며 협력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피오리나 이사장은 겸손과 협력을 AI 시대 리더의 덕목으로 꼽았다. 그는 “리더십은 현상 유지에 도전하고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며 “AI는 엄청난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핵심은 윤리와 장기적 사고에 기반한 신중하고 숙고한 의사 결정”이라고 조언했다. 칼리 피오리나 이사장은칼리 피오리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재단 이사장은 1954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태어났다. 헌법학자였던 부친을 따라 미국, 영국, 아프리카 등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1977년 부동산 중개회사에서 비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1980년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에 입사했다.

그가 정보기술(IT)업계에 이름을 떨친 사건은 AT&T에서 분사한 통신장비회사 루슨트테크놀로지스를 1996년 뉴욕증시에 사상 최고 액수로 상장시킨 일이다. 이후 루슨트테크놀로지스 글로벌 서비스 사업부 사장을 맡아 연 매출 200억달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1999년 44세 나이로 휴렛팩커드(HP) 최초의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미국 경영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대 기업의 첫 여성 CEO이기도 했다. 당시 ‘세기의 빅딜’로 주목받은 HP와 컴팩의 합병을 주도했다.

HP 퇴사 이후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미국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6년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경선에 나섰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