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싸서 못 먹겠다" 했는데…햄버거 '파격 변신' [김세린의 트렌드랩]

입력 2024-10-14 20:30
수정 2024-10-14 20:45

“여기 무슨 아트 전시회 하나?” 지난 주말 서울 성수동 한 대형 건물 앞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외관에 이끌려 내부로 들어서자 햄버거를 먹고 있는 모나리자 등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은색으로 뒤덮인 버거 형상은 팝아트 감성을 자아냈습니다.


이어 2층으로 올라가니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착용하고 버거를 먹는 젊은이들이 포착됐습니다. 이들이 버거를 한입 베어 물자 화면에 그림이 띄워졌습니다. 햄버거를 먹은 뒤 감정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이미지로 표현된 것입니다. 방문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흥미로워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이 공간은 놀랍게도 체험형 전시회가 아니라, 롯데리아가 1979년 서울 소공동에서 1호점을 낸 이후 창립 45주년을 맞아 선보인 ‘리아’s 버거 아트 뮤지엄’ 팝업스토어입니다. 이번 팝업은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으며 주말엔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오픈런’이 발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롯데리아에 따르면 이번 팝업 개점일이었던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누적 방문객은 약 16만명에 달합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버거값을 줄인상하며 한동안 침체했던 토종 프랜차이즈 버거 브랜드가 최근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분위기입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한 팝업을 여는가 하면, 젊은 세대의 호감도를 살 만한 이벤트를 여는 식입니다. 각종 대형마트에서 ‘초가성비’ 버거를 내세우며 경쟁을 선포한 가운데 위기의식을 느낀 행보로 풀이됩니다.



롯데리아는 이번 성수 팝업을 통해 햄버거를 소재로 예술적이면서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 감상부터 버거 시식 후 나오는 뇌파를 측정해 AI가 그림을 생성해주는 브레인 아트 체험, 롯데리아의 45주년을 담은 헤리티지 전시 등을 선보였는데요. AI 미러 포토 키오스크를 활용해 1979년, 1992년 등 롯데리아의 주요 이벤트 발생 시점의 분위기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타임머신 포토존’을 설치한 것도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또 젊은 고객뿐 아니라 ‘너희가 게 맛을 알아’ 등 유명한 CF 명대사를 탄생시킨 롯데리아 광고 작품 역사를 조명한 ‘45주년 존’에서는 부모 세대의 추억 회상을 자극해내는 데 성공해냈습니다. 한정판 버거를 무료로 증정한 점도 호평을 이끌었습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아온 롯데리아만의 헤리티지를 AI 이색 프로그램 및 아트 체험 등 신선한 콘텐츠로 제공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에 앞서 버거킹은 한글날을 기념해 지난 7일부터 전국 매장 400여곳에 ‘우리말 메뉴판’을 선보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 몰이를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이벤트는 지난해 10월 경기 수원 산남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글날에 보낸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는데요. 편지에서 학생들은 “버거킹 메뉴 일부를 한글로 바꾸고, 사용해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결국 학생들의 손을 통해 ‘몬스터 와퍼’는 ‘거대한 괴물 버거’, ‘콰트로 치즈 와퍼’는 ‘네 가지 숙성 우유 버거’라는 한글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사이드 메뉴의 경우 콜라는 ‘검은 단물’, 너겟킹은 ‘닭조각 튀김의 왕’, 코울슬로는 ‘차가운 양배추 모둠’으로 바뀌었습니다. 메뉴 분류 역시 ‘버거’, ‘곁들이’, ‘마실거리’ 등 최대한 우리말로 표현됐습니다. 국립국어원도 산남초 학생들이 제안한 한글명 외 기타 표현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표기될 수 있도록 감수를 진행하면서 손을 거들었다고 합니다. 버거킹은 해당 학교에 햄버거 및 음료 콤보 세트를 선물하며 화답했습니다. SNS에는 “귀엽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사용하면 좋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는 후문입니다.


맥도날드는 해피밀 세트를 통해 꾸준히 충성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해피밀 세트는 맥도날드가 1979년부터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부모들에게는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해 온 어린이용 세트 메뉴인데요. 버거, 사이드, 음료와 함께 장난감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동심을 간직한 ‘키덜트’ 사이에서도 구매가 늘어나 전 연령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맥도날드 측 설명입니다.

지난달 20일 패션 브랜드 크록스와 협업해 한정판으로 출시한 해피밀 토이가 조기 품절되며 4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전체 매장에서 전량 동났는데요. 출시 직후부터 소비자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인증 사진이 올라오며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이번 협업 제품은 깜찍한 크기의 크록스에 맥도날드 고유의 브랜드 컬러를 조화롭게 담아냈다고 맥도날드는 소개했습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전 세대가 맥도날드와 함께 기분 좋은 순간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굿즈와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토종 프랜차이즈 버거 브랜드가 고유의 브랜딩을 강조하는 행보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버거 가격을 줄인상하고 매장 취식가격과 배달 가격을 달리하는 ‘이중가격제’ 논란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려는 복안으로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마트에서 맛과 품질을 잡은 2000원대 버거가 인기몰이하며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전에 비해 비교적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황”이라며 “버거가 너무 비싸서 못 먹겠다는 식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최근엔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 층이 찾는 트렌드는 빠르게 변합니다. ‘왜 이걸 먹고, 찾고, 즐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젊은 문화. 유통업계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이 즐기는 것들이 기업 마케팅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깁니다. 다양한 트렌드를 다루고 연구하는 김세린의 트렌드랩(실험실)에서는 ‘요즘 뜨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