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당국이 징집 대상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모병관들이 수도 키이우 중심가에 있는 공연장에서 입대 대상인 남성들을 끌고 가는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전날 우크라이나 인기 록밴드 '오케인 엘지'의 공연이 한창이던 키이우 시내 실내 경기장에선 콘서트를 관람하러 온 남성들과 모병관 사이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같은 진풍경은 모병관들이 공연장에서 입대 연령인 남성들을 즉석 입대시키면서 펼쳐졌다. 보도에 따르면 모병관들은 경찰을 동원해 콘서트를 찾은 남성 전원을 대상으로 서류 검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를 거부하거나 서류에서 문제가 발견된 이들을 즉석에서 입대시켰다.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고 있는 한 영상에는 군복을 입은 모병관과 경찰들이 경기장 앞에서 남성들을 끌고 가는 모습이 담겼다. 한 남성은 "내게서 물러나라"며 거세게 저항하다가 결국 모병 데스크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 남성은 몸싸움 과정에서 셔츠가 찢어지기도 했다.
공연장 외에 인근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앞에서도 남성들을 대상으로 징집 검사가 진행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러시아와 3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현재 심각한 병력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개전 초기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입대자가 감소했고 병역 비리까지 기승을 부린 탓이다.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는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 사망자(최소 65만명)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 수준일 것으로 추산되지만, 전체 인구가 3500만명이란 점에서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올렉산드르 다닐리우크 연구원은 "(군에) 동원되는 것이 죽거나 장애인이 돼서야 퇴역할 수 있는 일방통행 티켓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징집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목숨을 걸고 국외로 탈출하는 남성들도 속출하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전쟁 발발 후 지난 4월까지 최소 30여명의 우크라이나인 남성이 무단으로 국경으로 넘으려다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강을 헤엄쳐 건너려다 익사하거나 산에서 동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대통령은 지난 4월 징집기피자 처벌을 강화하고 징집 대상 연령을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최근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죄수까지 징병하기 시작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