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일가 '헤어질 결심' 속출…주목받는 삼천리 '69년 동업'

입력 2024-10-14 14:16
수정 2024-10-18 11:05
이 기사는 10월 14일 14: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에너지기업 삼천리그룹 공동창업주 고(故) 유성연·이장균 명예회장 집안의 동업 체제가 69년 이어지고 있다. 삼천리그룹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동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의 동업 체제는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들이 동업 관계를 청산하는 가운데 더 주목받고 있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이상·이하 대기업집단) 88곳 가운데 서로 다른 두 가문이 공동경영 하는 대기업은 삼천리가 유일했다.

황해도 출신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동업해 세운 고려아연과 영풍 등 영풍그룹은 지난달 사실상 동업 관계를 청산했다. 지난달 19일 최윤범 회장 일가가 경영하는 고려아연은 장형진 영풍 회장 일가를 특수관계자에서 제외하는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공시했다. 장형진 회장이 경영하는 영풍도 최근 최 회장 일가를 특수관계자에서 제외했다. 1949년부터 이어진 동업 관계를 75년 만에 청산한 셈이다.

1955년 창업과 함께 이어진 삼천리 동업 관계는 여전히 탄탄하다. 두 사람은 숯을 제조해 판매하다 연탄으로 사업 반경을 넓혔다. 당시 유성연 명예회장은 연탄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사장을 맡고, 이장균 명예회장은 원탄 구매와 자금을 담당하는 부사장 형태로 역할을 나눠 회사를 키웠다. 이장균 명예회장의 일가가 연탄을 판매하는 삼천리, 유성연 명예회장은 탄광을 비롯한 석탄 구매와 자금을 담당하는 삼탄(현 에스티인터내셔널)의 경영을 맡았다.

하지만 석탄과 연탄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변신을 꾀한다. 삼천리는 1982년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해 도시가스사업으로 진출했다. 삼탄은 1982년 세계 5위 대형 탄광인 인도네시아 파시르 광산의 개발에 나섰다. 석탄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삼탄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사업이 번창하거나 대를 이어가면 동업 관계가 금이 간다. 하지만 두 집안의 관계는 여전히 탄탄하다. 두 가문은 삼천리와 에스티인터내셔널 지분을 여전히 절반씩 보유 중이다. 삼천리는 이장균 명예회장의 차남인 이만득 명예회장, 장손인 이은백 사장 등이 경영하고 있다. 이들 일가의 지분은 19.52%다. 유성연 명예회장의 장남인 유상덕 에스티인터내셔널 회장 일가도 삼천리 지분 19.52%를 보유 중이다.

에스티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다. 유상덕 회장 일가와 이만득 명예회장 일가가 각각 지분 50%(문화재단 지분 등 포함)를 보유 중이다. 하지만 삼천리와 에스티인터내셔널도 결국은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동업자 가문의 지분이 대를 거쳐 상속되면서 창업주 간 지분율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경영 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상속세율이 최대 60%에 달하는 만큼 대를 거치면서 지분율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동업 관계는 여러 목적을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합작을 유지할 명분과 실리가 사라진다"며 “삼천리와 삼탄의 동업 관계 지속은 그만큼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