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도 안 거치고 임의적립금으로 공개매수, 무조건 배임"

입력 2024-10-13 18:30
수정 2024-10-14 08:03
이 기사는 10월 13일 18: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자사주 취득 한도에서 임의적립금을 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려아연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김용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가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려아연이 주주총회에서 자원사업이나 해외에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오랜 기간 쌓아온 임의적립금을 주총도 거치지 않고 이사회에서 자사주 취득을 하겠다는데, 이는 회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용재 교수는 최근까지 금융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모든 금융행정 관련이슈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주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 등을 거쳤다. 주 연구분야는 자본시장법과 금융법이다.

김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고려아연을 상대로 '임의적립금' 논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회사 배당가능이익이 임의적립금을 포함해 6조원이 넘는다며 약 3조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지만 영풍-MBK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맞서왔다. 주총에서 이미 임의적립금 사용목적을 정해뒀는데 이를 무시하고 공개매수 자금으로 쓸 순 없다는 논리였다. 이들 연합의 계산에 따르면 임의적립금을 제외했을 때 사용가능한 자금은 600억원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임의적립금의 사용목적은 주식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주주총회가 정한 건데 이걸 이사회 결의만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석하면 그 자체로 주주들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다"며 "공개매수로 목적을 변경하려면 정관을 변경하거나 주총 승인을 얻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해 향후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고도 봤다. 그는 "대법원은 앞서 경영진이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종업원의 자사주 매입에 회사 자금을 지원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유상감자 때 유상 소각되는 주식가치를 실질 가치보다 높게 평가해 감자 환급금을 지급한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 한도 논쟁에 대한 견해는.

이 논쟁은 임의적립금(임의준비금)을 자기주식 취득에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서 벌어졌다.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자원사업이나 해외 투자에 쓰기로 약속하고 근 20년간 자금을 쌓아왔는데 이걸 이사회가 갑자기 자기주식 취득에 이용하겠다고 하니 반발을 산 게 시초다. 여기에 대해선 '자사주 취득 한도에서 임의적립금을 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려아연의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자본시장법과 상법상 자사주 취득은 배당가능이익을 한도로 한다. 자사주 취득과 배당이 실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이렇게 정해둔 것이다. 그런데 임의적립금은 주주들이 회사 미래를 위해 배당받지 않기로 결정한 돈이다. 그에 반해 배당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자사주 취득에 있어서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에 산입시킨다는 게 타당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려아연은 "고려아연의 정관상 중간배당에 대해선 임의적립금을 공제하도록 하고 있으나 자사주 취득과 관련해선 임의적립금을 공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려아연 정관의 중간배당 규정은 오히려 자사주 취득에서도 임의적립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상법상 중간배당이란 건 영업연도 도중 하는 이익배당이다. 자사주 취득도 본질적으로 '이익배당'과 동일하다. 이익배당, 중간배당, 자사주 취득은 결국 그 실질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고려아연 정관에 자사주 취득과 관련해 임의적립금을 공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는 주장도 이익배당, 자사주 취득 한도에선 임의적립금이 당연히 공제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정관에 별도로 규정을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간배당은 이익배당(정기배당)과 달리 주총 결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할 수 있다. 임의적립금을 공제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으면 중간배당에서는 이사회가 주총 결의 없이 배당 한도를 늘려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중간배당 한도에만 임의적립금을 정한 건 바로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 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간배당에 관한 정관 규정이 이익배당, 자사주 취득의 경우에도 준용될 여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고려아연이 목적이 특정된 적립금으로 공개매수를 하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자본시장법과 상법이 자사주 취득 한도를 제한하고 있는 취지, 주총의 지위나 주총과 이사회의 관계 등 상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식회사 관련 규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해보면 고려아연의 경우 주총 결의가 없는 한 임의준비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고려아연 주장대로라면 주주총회에서 정한 사항을 이사회가 임의로 변경할 수 있다는 건데 이건 주주총회가 최고의사결정기관이라는 회사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걸 이사회가 임의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석하면 그 자체로 주주들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다.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라면 물론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하는 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배당가능이익이 존재하느냐, 용도가 특정된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으로 삼으려면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의 여부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결정이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에 위반할 여지가 있다고 보나.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고려아연은 현 경영진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3조원을 웃도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고려아연이 제시한 공개매수가 89만원은 영풍-MBK 측 가격(83만원)보다도 7% 더 높다. 영풍이야 경영권을 취득하고자 하는 입장이니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공개매수를 할 유인이 있다지만 이미 경영권을 가진 경영진이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프리미엄을 추가로 얹어 더 비싸게 사고 있다. 이건 성실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며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이 더 높다는 건 고려아연 경영진이 자사주 취득을 위해 쓰는 비용이 불합리하게 높다는 걸 의미한다. 이 또한 선관주의 의무 위반의 요소다. 또 자사주 취득은 원래 모든 주주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건데 영풍은 최대주주임에도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엔 응할 수 없다. 사실상 최대주주를 배제하는 건데 이건 주주평등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처럼 경영권 분쟁 중 경영권 방어행위에 대해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가 있었나.

기본적으로 판례는 경영권 분쟁 중 경영권 방어 행위에 대해선 경영판단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쟁 중엔 경영진이 회사의 이익보다는 기존 지배주주의 지배권 유지 혹은 자신의 지위보전을 위해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사의 자기거래처럼 이익충돌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행위에 대해선 보다 엄격하게 원칙을 적용해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게 판례의 입장이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 경영진과 이사회의 배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국내 판례상 배임죄 여부에 대해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이 주된 기준이 된다. 고려아연 경영진이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으니 같은 이유로 배임죄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대법원은 경영진이 경영권 유지 목적에서 종업원의 자사주 매입에 회사 자금을 지원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유상감자 시 유상 소각되는 주식의 가치를 실질상의 그것보다 높게 평가해 감자 환급금을 지급한 사안에서도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 판례 모두 고려아연 경영진의 행위에 적용 가능한 판례로 보인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