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환자 느는데…쪼그라든 치유예산

입력 2024-10-11 17:44
수정 2024-10-12 01:49
도박중독 치료와 재활에 쓰일 내년 정부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스포츠토토와 홀덤 등 온라인 도박이 만연하고, 청소년 도박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관련 예산을 줄인 조치를 둘러싼 적절성 논란이 예상된다.

11일 나라살림연구소의 사행산업 예방·치유사업 예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에 배정된 내년 ‘도박중독 치유·재활 예산’은 117억5400만원으로 작년(129억9000만원)보다 9.5%(12억3600만원) 감소했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심의와 의결을 통해 확정된다.

도박 예방 및 근절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는 "도박 예방 교육과 치유 자료의 전산화를 목표로 한 차세대 디지털 전환 1차 사업이 완료되면서 전체 예산이 축소됐다"고 해명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도박중독 유병률이 특히 높다는 점에서 예산 감소가 정부의 ‘도박 근절 정책’에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도박중독 유병률은 국민 중 도박 문제를 겪는 사람 비율을 뜻한다. 2022년 기준 한국 유병률은 5.5%로 영국(1.5%), 캐나다(1.6%), 호주(3.8%) 등보다 크게 높다. 2022년 당장 치료가 필요한 ‘문제성 도박’ 유병률도 2.1%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은 경제,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특히 위험한 만큼 예방과 조기 치료에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작년 도박중독 치료를 받은 환자는 2743명에 그친다. 국내 도박 중독자는 약 24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경마·경륜장 등 사행산업 사업자에게 매출의 0.35% 규모인 중독 예방 치유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 예산과 부담금을 활용해 전국에 15곳의 도박 문제 예방치유원을 운영하고, 민간 기관과 연계한 중독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매년 8~10월 상담이 끝나고, 희망자가 서비스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부담금 부과 요율을 선진국 수준인 1~2%로 높여서라도 중독 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에 중독되면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절도 등 각종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다”며 “중독자들이 사회에 원활히 복귀할 수 있도록 상담소와 재활센터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다빈/정희원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