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경제가 도약하려면 정부는 기업을 간섭하고 싶은 유혹을 참고 무대만 깔아줘야 합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제43회 다산경제학상’을 받은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제13회 다산젊은경제학자상’을 받은 이서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 후 인터뷰에서 저성장이 굳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인구·교육 등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며 “세세한 정책보다는 기업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고령화사회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한국에서도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하고 부가가치를 창조할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다산경제학상과 다산젊은경제학자상은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석학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경제학상이다. ○첨단기술 혁신만이 저성장 해법수상자들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로에 섰다고 진단했다. 거시 금융경제 전문가인 김 교수는 “수출은 잘되고 있지만 삼성전자 주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래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기 변동 측면에서 금리를 내리면 내수가 좋아질 것이란 분석이 있지만 최근 한국은행 연구에서처럼 인구, 교육, 집값 등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고 진단했다.
거시경제학자인 최 교수도 “세계 최대 경제 강국인 미국은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인데도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며 “미국과 같은 첨단기술 혁신이 없다면 한국은 고성장 국면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상자들은 이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연 3.50%→연 3.25%)가 예정된 수순이었던 만큼 정부가 기대하는 내수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소비와 투자를 짓눌렀던 고금리 기조가 해소되면 내수가 살아날 것이란 정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얘기다.
이 교수는 “금리 인하 기대가 시장에 선반영된 데다 예상하고 있던 만큼 금리를 내려서는 내수 진작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자영업자, 중소기업 문제 등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야 내수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난 2년간 기준금리가 오른 데 비해 대출금리 등 최종 금리 인상폭이 크지 않았던 것처럼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시중 금리가 그만큼 낮아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다음 산업 방향은 AI한국 경제를 둘러싼 가계부채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부채의 양보다 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김 교수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쓰러지지 않으면 괜찮듯이 적정한 가계부채 규모에도 정답이 없다”며 “부채의 절대적 규모보다 더 중요한 점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질을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실질적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취약 차주에게 집중해야 내수 진작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혁신과 구조개혁에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 교수는 “반도체 다음으로 한국이 가야할 산업 방향은 AI”라며 “기업만큼 잘할 수 있는 주체는 없기 때문에 정부는 큰 방향에서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기업을 간섭하고 싶은 욕망은 참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성장이 저조한 서비스업과 관련해선 “한국인 마음속에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영향이 있다”며 “서비스업 시장을 키우기 위한 한국형 모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도 “AI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며 “많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AI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단순한 대출금리 인하, 보조금 지급을 넘어선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두고서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미래 세대의 재원을 가져다 쓰는 현금 지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금 지원이 한계에 몰린 사람에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더 큰 경제적 파이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지역화폐와 현금 지원이 당장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어 장단점이 극명하다”고 평가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