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지갑 털고 털고 또 털고…'K팝 음반 상술' 왜 안 끊길까 [연계소문]

입력 2024-10-13 14:06
수정 2024-10-14 00:21

K팝 글로벌화를 이끈 SM·JYP·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엔터사 대표들이 나란히 국감장에 앉았다. 음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밀어내기' 등 비정상적인 방식이 동원되고 있다는 질타에 이들은 "확인해 보겠다"며 건강한 방향으로의 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대중문화를 이끄는 회사의 수장들이 사실상 혼나러 가는 이 자리에 소환된 것은 K팝의 놀라운 성장세에 따른 책임을 묻고자 함이었다. 최근 몇 년 새 K팝 업계는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까지 진출하며 무서운 속도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밀리언셀러(앨범 100만장 이상 판매), 더블 밀리언셀러(200만장 이상 판매), 트리플 밀리언셀러(300만장 이상 판매), 쿼드러플 밀리언셀러(400만장 이상 판매) 기록이 쏟아지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도한 판매 경쟁이 있었다. 앨범마다 멤버들의 얼굴이 각기 다른 포토카드를 넣어 '랜덤 뽑기' 형식으로 원하는 카드를 뽑을 때까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이미 수년째 이어진 방식이다. 이에 더해 이제는 앨범 표지를 멤버별로 인쇄하기도 한다. 일주일간의 판매량, 즉 초동 판매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 위해 앨범 판매사나 유통사가 물량을 대규모로 구매해주고, 이후 기획사가 팬 사인회 등의 행사로 판매를 지원해주는 행위인 '밀어내기' 관행도 지적받고 있다.

CD는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로 제작되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이에 앨범 판매를 늘리기 위한 상술은 곧 엔터사들이 내세우고 있는 ESG 경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개념이다.


지난해 하이브는 음반 발매로 사용한 플라스틱이 1405톤을 넘었다. 플라스틱 배출량이 재작년 729톤에서 무려 670톤이나 증가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160톤에서 208톤으로 늘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87톤에서 106톤으로 증가했다. 특히 하이브의 경우 국내 11개 대형 음반 제작사가 앨범 발매에 쓴 플라스틱 전체 사용량(1883톤)의 75%를 차지했다.

K팝 팬들로 이루어진 환경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달 국내외 K팝 팬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42.8%)가 앨범을 많이 구매할수록 팬 사인회 참여 확률이 높아지는 앨범 마케팅 등을 최악의 상술로 꼽았다. 표지만 바꿔 앨범을 여러 종류 출시하거나, 원하는 포토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 구매를 유도하는 관행도 지적받았다.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전 세계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는 정규 10집 '문 뮤직(Moon Music)'을 세계 최초로 140g의 친환경 레코드 재생 페트 LP로 발매해 화제가 됐다. 이를 통해 25톤 이상의 버진 플라스틱 제조를 방지하고, 기존 140g LP에 비해 제조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6% 감소했다. CD 에디션은 세계 최초로 소비 후 폐기물에서 얻은 재활용 폴리카보네이트 90%로 만들어진 친환경 CD로 발매됐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월드투어를 잠정 중단했던 이들은 지속 가능성 실천을 위한 보완책을 준비해 2022년부터 투어도 재개했다.

재활용된 배터리와 행사장 내 태양열 설비로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 사용과 저탄소 운송 수단을 이용했다. 관객에게 제공한 LED 팔찌는 공연 후 수거해 재사용했고, 관객 수만큼 나무 심기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전 투어와 비교해 59%나 감소했다.

K팝 팬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앨범 마케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최근 하이브 사옥 앞에서 캠페인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엔터사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제작하는가 하면, CD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과 포토카드 등 부속품만을 제공하는 플랫폼 앨범 등을 내놓으며 환경 보호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과도한 상술을 동반한 판매량 경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세븐틴의 앨범이 일본 번화가에 대량으로 버려진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환경 파괴라는 비판 속에서도 왜 앨범 판매 경쟁은 더 거세지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정적인 아티스트 인적 자원으로 수익화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엔터는 사람으로 하는 일이라 팬들은 공연이나 팬미팅처럼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는 소비에 가장 열정적인 성향을 보인다. 한때 버추얼·가상 콘텐츠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단계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고 짚었다.

이어 "K팝 산업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는데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그만큼 다각화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면서 "여전히 앨범이나 굿즈 소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음반 판매량 하락이 엔터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과도한 경쟁은 환경 보호 문제와 함께 음악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결과적으로 K팝의 성장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버려지는 CD 수백, 수천 장이 이를 말해준다. 팬들마저 피로도를 호소하는 분위기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상반기 음반 판매량 1~400위 앨범의 누적 판매량은 4670만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820만장(14.9%) 감소했다. 수출액도 1억3161만 달러(약 1813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 감소했다. 상반기 음반 수출액이 꺾인 건 2015년 이후 처음이었다.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사인회 등의 이벤트는 문제가 있다면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개선 방향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면서 "저희 업은 수십년간 세계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새로운 노력을 많이 하겠다"고 밝혔다.

장철혁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역시 "K팝이 성장하다 보니 책임감을 느낀다. 엔터사들 수입의 절대적인 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는데 국내외 K팝 팬들에게 건전한 영향력을 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음악계 성장세가 커지다 보니 미비한 점도 발견된다. 주신 지적을 통해서 계속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준원 위버스컴퍼니(하이브 자회사) 대표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CD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며 자원 낭비가 이뤄진다는 시장과 사회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플랫폼에서는 CD 없는 QR 코드로 바로 음원을 다운받는 위버스 앨범 등을 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