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價 높여도 주가 발목 잡는 가처분…법조계선 "인용 쉽지 않아"

입력 2024-10-11 14:38
수정 2024-10-11 15:29
이 기사는 10월 11일 14:3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는 초강수를 뒀지만 주가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날 1시30분 기준 고려아연의 주가는 전날과 동일한 주당 79만원선에서 소폭의 등락을 보였고, 영풍정밀은 전날대비 7.52% 하락한 2만8900원에 형성됐다. 최회장 측의 공개매수 제시가격인 주당 89만원, 3만5000원에 크게 못미치는 가격이다.

현재 가격이 이어져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이 제시한 공개매수가격인 주당 83만원과 3만원을 넘기지 못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이달 14일 마감하는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에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양측 모두 공개매수 성패와 관계없이 요청한 물량을 모두 사들이기로 한 만큼 먼저 14일 MBK 측 공개매수에 응한 다음 9일 뒤인 23일 최 회장 측 공개매수에도 참여해 차익을 거두는 전략이다. 이 경우 최 회장 측은 MBK측보다 높은 가격을 쓰고도 경영권을 잃는 결과를 맞게 된다.

MBK 측이 기존 가격을 고수하고 최 회장이 가격을 올렸음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은 원인은 법적 리스크에 따른 '공포심'이 영향을 미쳤다. MBK 측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공개매수 종료 후 주가는 이전 시세인 주당 55만원 대로 복귀할 가능성이 큰데, 단기간 실질가치보다 높게 형성된 가격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및 충실 의무 위반은 물론, 업무상 배임이라는 주장이다.

시장에선 최 회장 측이 제시한 주당 89만원의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가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수심이 매수세를 막아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할 생각으로 MBK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았다가 추후 법원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효력이 없다고 판단 내린다면 MBK를 통해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날 MBK 측은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가 상향에 대해 "기존에 진행 중이던 소송절차를 통한 구제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며 압박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지난 9월 13일 MBK 파트너스·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기간 중 특별관계자인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막아달라는 1차 가처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이 2차 가처분을 통해 공개매수를 중단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란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번 가처분을 앞서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의 기각 결정을 내렸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에서 다시 심리할 예정이란 점에서 재판부가 전과 같은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재판부의 1차 판단을 뒤집으려면 새로운 증거자료라던가 기존에 좀 주장하지 않았던 주장 등 그 사이에 새로운 사정이 제출돼야하는데 동일한 재판부에서 동일한 판단 받는다면 뒤집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MBK파트너스 측은 1차 가처분과 2차 가처분은 내용과 쟁점이 서로 다른 사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1차 가처분에선 고려아연 이사회가 제시할 공개매수 조건과 내용 등이 특정되지 않아 재판부가 판단할 수 없었다는 취지였던 반면 이번 가처분에선 최 회장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 내용이 확정된만큼 별도의 쟁점을 두고 재판부의 판단이 이뤄질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자기주식 취득 한도인 배당가능이익과 관련한 부분이 앞선 가처분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번 가처분 판단에선 주요 쟁점으로 거론될 것이란 게 법조계의 예상이다. 고려아연 측은 회사의 배당가능이익이 임의적립금을 포함해 6조원이 넘는다며 약 3조2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임의적립금을 제외할 경우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이 약 600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둔 전문가들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MBK 측은 "임의적립금은 주주들이 정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승인한 이익잉여금으로 사용 여부는 주주에게 있다"며 "주주총회 결의 혹은 정관 변경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기주식 매입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지닌 학자들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배당가능이익의 구성요소를 정하고 있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따르면 배당가능이익에서 임의적립금을 빼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는 만큼 배당가능이익을 6조원 이상으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재부 세제 고위관료 출신 관계자는 "법원 판례는 상법상 정한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회사가 자기주식 취득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지 이익잉여금 범위 내에서만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거나 임의적립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며 "재판부가 앞선 결정을 깨고 인용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펌 변호사는 "배임 혐의 등 석연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공개매수가 진행되기 전이라면 몰라도 진행 중에 재판부가 3조원대 공개매수를 막아세우는 것은 누가 봐도 위법적인 절차적 하자가 있지 않는 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