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인데 '서울대 의대' 간다면서…" 대치동 현실에 '깜짝' [대치동 이야기 ?]

입력 2024-10-14 06:41
수정 2024-10-14 08:42
‘사교육 1번지’의 대명사가 된 대치동 일대가 일터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대치동 학생들과 부모들의 일상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

대치동 사람이면서도 대치동 사람이 아닌, ‘대치동’을 어느 정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학원가 주변의 수많은 식당과 카페, 그리고 병원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교육의 중심의 설 아이와 학부모를 마주하는 교육 컨설턴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치동 엄마들이 단순히 ‘쥐 잡듯’ 아이의 교육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이들이 바라본 대치동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는 ‘에필로그’를 통해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아이 교육을 불안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이른바 ‘강남키즈’로 유년기를 보내고 대치동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가 지금은 유아·초등학생 대상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는 박은주 링고맘에듀 대표는 “6세 아이를 둔 한 학부모가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한다’며 상담을 의뢰했던 경험이 있다”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박 대표는 “아이는 우수한 유전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나는 가정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며 “교육 컨설턴트로서 무엇보다 아이가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는 기자가 20년 경력을 지닌 박 대표에게 상담을 진행하며 기억에 남은 사례를 묻자 나온 답변이다. 대치동에선 적지 않은 학부모가 자식들 교육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건강하게 작용해 긍정적인 발전을 끌어낼 때도 있으나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박 대표는 “대치동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보며 ‘대치 드림’을 안고 입성하는 많은 학부모를 만나왔다”면서도 “그러나 대치동의 이면을 솔직하게 알려드리는 것 역시 컨설턴트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대치맘’ 교육 컨설턴트가 바라본 대치동이런 박 대표 역시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강남 중학생 아이를 둔 부모”라고 털어놨다. 그를 비롯한 부모들의 불안은 학원만 보내놓고 ‘나 몰라라’하는 것이 아닌 ‘완벽’을 위한 지속적인 개입과 관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학원도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밤 10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상담을 이어가고, 주말에도 모바일 메신저 대응을 이어간다. 박 대표는 “대치동 부모들은 아이의 나잇대별 목표 학습플랜이 명확하다. 이를 위한 적합한 학원을 고르는데 상당히 신중하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 개인 컨설팅을 문의하는 대다수의 학부모는 성적이 우수한 아이를 둔 이들로 파악됐다. 박 대표를 찾아오는 적지 않은 의뢰인이 어린 자녀의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부모가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 보니 공부로 인생을 설계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들이 많다. 이미 자신의 아이들이 우수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컨설팅 의뢰를 한다”며 “유아기부터 교육 컨설팅을 원하는 이유는 계획을 짜는 데 실수를 줄이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비용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대치동은 영어학습 시작 연령이 타지역에 비해 어리고 학습 기간이 길다. 통상 4세부터 영어 학습을 시작하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영어 능력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에 주력한다. 아이가 자라 초등 4~5학년이 되면 진지하게 대학 입시를 고민한다.

또 대치동 아이들은 타지역에 비해 독서량이 월등히 많고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논술학원에 다니는 데다 초등 수준 이상의 책을 읽는 게 익숙하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수준이 높아 놀랄 때가 많다. ‘너 이 책 읽어봤어?’ 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며 “수학 과목을 두고 선행 속도나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를 서로 파악해가며 경쟁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는 과한 경쟁을 하는듯해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다만 대치동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해 명문대를 진학하는 것만이 유일한 인생항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일단 중등 시기까지는 열심히 학업에 몰두해 달려보지만, 아이가 국내 입시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돕는다”며 “대치동에는 체대나 미대 등 예체능 계열 입시, 해외 유학 트랙을 준비하는 기관도 다양하게 있다. 이를 위한 정보를 큐레이팅해주고 입시의 길로 안내하는 컨설팅 조직이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치동 사교육 시장은 변화하고 있고 여러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박 대표는 주목했다. 실제 최근 들어 거대 학원의 합병이나 협력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오프라인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전국형 온라인 수업을 동시에 진행해 외형 확장에 나선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만 박 대표는 “오랜 명성을 지닌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대치의 네임밸류는 지속될 것”이라면서 “교육 방식이나 비즈니스 모델은 점차 변화할 것이며,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교육 콘텐츠가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학습 범위를 넘어 창의성과 글로벌 역량, 심리적 안정까지 아우르는 교육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을 보일 것 같다”며 “컨설턴트로서, 그리고 대치동 학부모로서 사교육 패러다임이 변하고 아이들에게 더 폭넓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