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만에 실험실 세팅…제약사 암젠의 혁신 비결

입력 2024-10-10 18:21
수정 2024-10-10 18:22
암젠은 한국 바이오벤처기업의 롤모델로 꼽히곤 한다. 글로벌 빅파마 중 가장 빨리 성장한 회사라서다. 1980년 창업해 3년 만에 나스닥시장에 상장했으며, 창업 12년 만에 매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달성했다. 지난달 방문한 암젠 사우스샌프란시스코 연구개발(R&D)센터에서 암젠의 고속 성장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암젠은 2년 전 사우스샌프란시스코에 흩어져 있던 여러 연구센터를 한곳에 모아 7층 규모 건물로 이사 왔다. 암젠이 이전한 R&D센터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암 치료 꿈의 신약으로 불리는 다중항체를 개발하는 곳이다.

삼엄한 보안 검색을 거쳐 실험실로 들어서자 바퀴가 달린 책상과 천장에 달린 콘센트가 눈에 띄었다. 제이슨 드보스 암젠 사우스샌프란시스코 R&D센터장(사진)은 “책상과 방의 크기 모두 조정이 가능해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30분 만에 실험실을 교체할 수 있다”며 “과학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에 유연하게 대응할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연성을 무기로 암젠은 그 어떤 글로벌 빅파마보다 빠르게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2년 유전학 연구 기업 디코드를 인수해 인간 유전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규명할 여러 연구 자료를 획득했다. 지난달에는 엔비디아와 신약 개발을 위한 생성형 AI 모델을 아이슬란드에 있는 R&D센터에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암젠이 AI 신약 개발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신약 중에서도 암젠이 주력하는 분야는 다중항체다. 하나의 약이 하나의 항원에만 작용하는 단일항체와 다르게 다중항체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항원에 작용한다. 기존 단일항체 치료제 대비 치료 효과가 높아 여러 불치병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암젠이 2014년 처음 선보인 이중항체 치료제 블린사이토는 면역 T세포를 강화하면서 이 T세포가 백혈병 세포의 항원만 공격하도록 명령한다. 이중 효과를 내는 셈이다. 부작용도 적다. 드보스 센터장은 “다중항체 기술을 이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종양세포를 공격하고, 일반 세포에는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신속승인을 받은 소세포폐암 다중항체 치료제 임델트라 역시 통합R&D센터에서 탄생했다. 소세포폐암은 폐암 중에서도 악성도가 높고, 전이가 빨라 기대여명이 낮은 암이다. 암젠은 면역세포가 직접 종양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해 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 선택지를 늘렸다.

사우스샌프란시스코=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