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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는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칸 위원장을 유임시키자니 민주당 거액 후원자들이 반발하고, 새 인물로 대체하자니 당내 강경파가 거세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하원의원(뉴욕)은 10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억만장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려고 해 분명히 약속하겠다”며 “누구든 칸 위원장을 건드리면 난투극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르테스 의원은 민주당 내 강경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이다.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 역시 “불법 독점을 통한 대기업의 소비자 갈취와 노동자 착취를 탁월하게 막고 있다”며 “칸은 역사상 최고의 FTC 위원장”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는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억만장자 마크 큐번이 전날 “나라면 칸 위원장을 유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큐번은 “가장 큰 테크기업을 해체하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독점 정책을 이끄는 칸 위원장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기업인 사이에서 ‘공공의 적’으로 평가받는다.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공동창업자도 지난 7월 “칸 위원장은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해임을 요구했다. 칸 위원장은 호프먼이 이사로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게임회사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할 때 반대했다.
미디어업계 거물인 배리 딜러 IAC 회장도 “칸 위원장은 기업이 하려는 거의 모든 것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FTC는 IAC그룹 산하의 가사 돌봄 서비스 기업 케어닷컴이 ‘회원 가입 취소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제기했고, 8월 케어닷컴은 소비자에게 850만달러(약 114억원)를 환불하기로 합의했다.
일각에선 억만장자들의 공개적인 해임 요구가 오히려 칸 위원장 입지를 공고히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리즈 슐러 미국노동연맹-산별조직회의(AFL-CIO) 회장은 “억만장자와 싸우는 것은 요즘 인기 있는 포지션”이라며 “칸 위원장의 유임을 보장한 호프먼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칸 위원장 임기는 지난달 끝났지만 법에 따라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해리스 부통령과 가까운 금융계 인사들 발언을 인용해 해리스 부통령이 칸 위원장과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온건한 인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캠프 측은 인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